움직이는 거푸집

(행위고찰2) 움직이는 거푸집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의 거버넌스 코드를 짓다


1. 들어가며 — 부속 문서의 자리

이 글은 본문(『권력을 공유하는 기쁨: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의 사상적 토대를 묻다』)의 부속 문서다. 본문 10.3절 「거버넌스 코드: 만들고, 행하고, 살아내는 세 자리」에서 기초를 놓은 주춧돌 위에 우리 기업이 지향해야 할 기업지배구조 이론의 기둥을 세우려는 시도다. 이 글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글의 사상은 본문에 의지한다. 본문 5장의 권력론과 이소노미(Isonomy), 7장의 아감벤(Giorgio Agamben)이 풀어낸 제스처(Gesture), 10장 도입부의 정치경제학 호응 — 폴라니(Karl Polanyi)와 슈마허(E. F. Schumacher)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 이 이 글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 글의 역할은 그 사상을 한국 중소기업이 적용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구체화하는 것이다.

둘째, 이 글은 청사진이 아니라 잠정의 거푸집이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의 모범답안을 적은 글이 아니다. 본문의 닫는 말에서 인용했듯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거푸집은 그 안을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채워야 비로소 단단한 모양을 갖출 수 있다. 이 글은 매일 다시 짓고 새로 살아내야 하는 자리에 놓는 잠정의 글이다.

이 글은 또한 한국의 한 중소기업 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상황과 처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이 글이 품은 개념은 개별 회사가 처한 각자의 구체성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 한계를 인정한다. 그래서 다른 회사가 이 글의 이론을 적용할 때에는 항상 각자가 처한 현실의 구체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거듭해야 함을 밝혀둔다. 추상의 도식과 매일의 결정 사이의 긴장은 끝까지 이 글과 동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용 정책은 다음과 같다. 사상의 핵심을 가져올 때 본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이 글의 성격에 맞게 다시 풀어 썼다. 본문에서 한 차례 든 사례 — 1995년 삼풍백화점, 2014년 세월호, 옥시 가습기 살균제, 보잉 737 MAX — 는 기억의 환기 차원으로만 가져오고 새 사례는 더하지 않았다. 본문의 사례가 이미 충분히 무겁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용에 의지하는 부분은 절 번호를 적었다. 각주 체계는 본문과 일관되게 처리했다.

이 글과 짝을 이루는 부속 「(행위고찰3) 살아내는 숨결」과 공유하는 어휘 — 짜임·응답·분리·비켜섬·살아내다·잠정성·Form-of-life·그린워싱·한국 중소기업 — 는 별첨 「부속 공유 용어집」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본문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두 부속에서 자라난 어휘를 같은 뜻으로 쓰려 함이다. 살아내다와 Form-of-life는 본문에서 들여와 두 부속이 이어받았다.


2. 거푸집의 토대 — 권력·이소노미·삼층구조

본격적으로 이론의 기둥을 세우기 전에 세 가지 개념을 간단히 복기한다. 본문 5장에서 펼친 권력론과 이소노미 개념을 다시 훑어보는 일이다. 거버넌스 코드가 무엇을 짓는 거푸집인지 분명하게 보이려면 그 거푸집이 무엇을 받아내는 자리에 놓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 자리는 권력이 발생하는 자리다. 본문 5장을 막 읽고 온 독자는 이 장을 가볍게 건너뛰고 3장으로 가도 좋다. 이 글만 따로 읽는 독자를 위해 다시 적는다.

2.1 권력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권력을 누군가가 가진 것으로 여긴다. 대주주의 권력, 회장의 권력, CEO의 권력. 그러나 이 통념은 권력을 힘 혹은 권한과 뒤섞는다. 한 사람이 가진 물리력이나 영향력은 권력이 아니라 그저 힘이다. 정관과 규정이 부여하는 결재권은 권력이 아니라 권한이다. 권력은 그것들과 다른 자리에 있다.

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함께 말하고 함께 행위할 때 사람들 사이에 잠재해 있다가 솟아나는 에너지다. 흩어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모일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권력은 함께 가지는 것이지 누구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문 5장에서 말한 그대로다.

이 점이 거버넌스 설계에 무거운 함의를 던진다. 권력이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면 거버넌스의 일은 그 발생의 자리를 매일 새로 여는 것이다. 한 자리에 권력을 모으는 일은 거버넌스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발생 자체를 막는 일이다. 군대가 광장으로 나오면 정치가 끝나듯, 한 사람이 회사의 모든 결정권을 차지하면 거버넌스는 끝나고 명령만 남는다. 거버넌스 코드의 자리는 그 끝남을 매일 미루는 자리다.

2.2 이소노미: 명령이 아니라 응답

권력이 함께 행위할 때만 발생한다면 그 함께 행위하는 자리는 어떻게 짜야 하는가. 본문이 이 물음의 답으로 끌어온 것이 아렌트가 발굴한 그리스어 이소노미다. 이소(iso)는 ‘같음’이고 노미(nomy)는 ‘법’ 또는 ‘질서’다. 누구도 지배하거나 지배받지 않는 평등한 질서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을 한 번 더 살펴보자. 오늘날 ‘지배하다’로 옮겨지는 그리스어 아르케인(archein)은 본래 ‘시작하다’라는 뜻이었다. 이 말은 다른 사람과 함께 그 행위를 완수한다는 뜻의 프라테인(prattein)과 짝을 이루어 행위자 사이의 상호의존을 가리켰다. 시작하는 자와 그 시작에 응답해 함께 완성으로 끌고 가는 자가 한 행위를 이룬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아르케인은 시작의 뜻을 잃고 지배의 뜻만 남았다. 시작하는 자는 명령하는 자가 되고 응답하는 자는 복종하는 자가 되었다. 정치는 행위가 아니라 지배로 변질됐다.

이 변질이 기업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시작하는 이사회와 응답하는 경영진, 시작하는 경영진과 응답하는 임직원이 본래 짝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시작이 명령으로 굳고 응답이 복종으로 굳으면 거버넌스는 행위의 자리에서 지배의 자리로 떨어진다. 이사회가 보고와 결재의 자리로 떨어지고, 노사협의회가 통보의 자리로 떨어지고, 위원회가 형식의 자리로 떨어진다. 그 떨어짐을 매일 경계하는 일이 이소노미를 살아 있게 두는 일이다.

2.3 삼층구조는 권력 발생의 거푸집이다

본문 10.3절에서 밑그림을 그린 삼층구조 — Facere(파케레, 만들기)와 Agere(아게레, 행하기)와 Gerere(게레레, 살아내기) — 는 권력 발생의 자리를 셋으로 갈라 그 사이에 간격을 만드는 틀이다. 이 갈라짐은 분업이 아니다. 분업은 효율의 짜임이지만 갈라짐은 공명(共鳴)의 짜임이다. 자리들을 명령으로 묶지 않고 자리마다 각자의 음으로 울리게 해서 그 음들이 함께 화음을 이루게 하는 틀이다.

이사회의 자리(Facere)는 헌법을 만드는 자리다. 정관·이사회 규정·위원회 규정·보상 정책·윤리 규정·중장기 전략. 이들이 회사라는 작은 정치 공동체의 헌법이다. 이사회의 행위는 이 헌법에 새겨져 이사회가 자리를 비운 뒤에도 회사에 남는다. 시인이 희곡을 쓰는 일과 같다.

경영진의 자리(Agere)는 그 헌법의 짜임에 따라 매일 회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자리다. 사업의 운영, 영업과 투자의 결정, 시장에서의 실행, 위기 대응. 이 일들에도 이루려는 목표가 있고 거두어야 할 성과가 있다. 다만 이 일들은 헌법처럼 회사에 새겨져 남는 산물(artifact)을 짓는 일이 아니다. 일의 무게가 산물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에 실리는 일이다.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하듯 경영진은 짜인 거푸집 안에서 매일 회사라는 공동체를 만든다. 어느 배우나 최선의 연기로 훌륭한 공연을 펼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막이 내린 뒤 무대에 남아 있는 산물은 없다. 연기의 값은 연기하는 동안에 있다.

의장과 위원회의 자리, 그리고 임직원 모두의 자리(Gerere)는 그 짜임과 연기를 매일 살아내는 자리다. 이사회 의장의 꾸준한 조정과 감독, 감사위원회와 리스크위원회와 인사위원회의 모니터링, 강화된 노사협의회의 일상 운영, 윤리·컴플라이언스의 일상 점검,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문화 그 자체. 이 모든 일은 한 번 만들고 끝나지 않는다. 한 차례의 실행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매일 다시 살아내야 한다. 본문이 아감벤을 빌려 살핀 제스처의 자리가 여기다.

2.4 분리는 공명의 조건이다

이 셋으로 나뉜 자리에서 가장 무거운 명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분리는 공명의 조건이다. 한 자리가 다른 자리를 명령하는 자리로 굳지 않으려면 자리들 사이에 간격이 있어야 한다. 간격이 있어야 자리마다 자기 음으로 울린다. 각자 자기 음으로 울리는 자리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화음을 연주할 때 그 사이에서 권력이 발생한다. 권력이 발생하면 이소노미가 살아 숨 쉰다.

거꾸로 자리들이 한 사람에게 모이거나 한 자리가 다른 자리를 잡아먹으면 화음을 구성해야 할 음이 줄어든다. 한 음만 남은 자리에서는 공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공명이 사라지면 권력도 사라진다. 권력이 사라지면 명령과 복종만 남는다. 본문이 짚은 사례 — 삼풍백화점, 세월호, 옥시 가습기 살균제, 보잉 737 MAX — 가 그 사라짐의 참혹한 결과를 보여 준다. 규정(Facere)이 종이 위에 있고 영업(Agere)이 이어져도, 그 규정을 살아내는 매일의 점검과 책임의 양식(Gerere)이 사라지면 규정 위반조차 일상이 되고 끝내 사람이 죽는다. 분리가 무너지고 명령과 복종만 남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음 장부터 셋의 자리를 하나씩 짚어 본다. 3장은 Facere, 이사회의 자리. 4장은 Agere, 경영진의 자리. 5장은 Gerere, 의장과 위원회와 일상의 자리. 그 셋을 다 짚은 뒤 6장은 그 셋이 한국 중소기업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본다. 7장은 닫는 말이다. 모든 자리의 바닥에 '분리는 공명의 조건이다'라는 명제가 깔려 있다.


3. Facere — 이사회의 자리

2장에서 하나의 명제를 단단히 세웠다. 분리는 공명의 조건이다. 자리들 사이에 간격이 있어야 저마다 자기 음을 울릴 수 있다. 각각의 음들이 화음을 이룰 때 그 안에서 권력이 발생한다. 이제 삼층구조의 첫 자리로 들어간다. 시인의 자리, Facere — 이사회의 자리다.

3.1 헌법을 만드는 자리

이사회가 만들어 내는 것은 산물이다. 정관, 이사회 규정, 위원회 규정, 보상 정책, 윤리 규정, 중장기 전략 등. 이 산물들은 모두 한 번 만들어지면 회사라는 조직에 깊게 새겨진다. 이사들이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들이 함께 만든 산물들은 회사를 묶는 틀로 남는다. 이 자리의 권한을 본문에서는 헌정적(constitutive)이라 적었다. 회사라는 작은 정치 공동체의 헌법을 만드는 권한이라는 뜻이다.

이 자리는 시인에 비유한다. 시인이 희곡 한 편을 쓰면 그 희곡은 시인이 죽은 뒤에도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 안에 살아 있다. 한 번 완성된 희곡은 매일의 무대를 떠받친다. 이사회의 산물도 이와 같다. 매일 회사에 들어와 한 결정 한 결정 끼어드는 자리가 아니다. 한 번 단단히 만들고 비켜서는 자리다.

이 비켜섬이 곧 분리다. 이사회가 매일의 경영(Agere)에 끼어들면 시작과 응답의 짝이 무너진다. 이사회는 시작하는 자리이지 응답하는 자리가 아니다. 응답은 경영진의 자리, 임직원의 자리, 위원회의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사회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비로소 다른 자리들이 자기 음으로 울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단단히 만든다는 것이 영구히 그대로 둔다는 뜻은 아니다. 헌법도 시대에 맞춰 다시 만들어진다. 회사의 정관도 그러하고 이사회 규정도 그러하다. 그래서 이사회는 주기마다 다시 만드는 자리이기도 하다. 매일 끼어들지 않는 분리와 주기마다 단단히 다시 만드는 책임. 이 둘이 함께 있어야 헌법의 자리가 산다.

3.2 누가 헌법을 만드는가 — 지식의 정치

헌법을 만들 때 가장 무거운 물음은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다. 누가 만드느냐다. 같은 헌법도 만드는 사람이 다르면 결이 달라진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 그가 가진 지식의 종류, 그가 자기 자리에서 보는 회사의 모습. 이 세 가지가 그대로 헌법에 새겨진다.

이 물음이 본문 9장에서 살펴본 번스타인(Richard J. Bernstein)의 비판과 만난다. 번스타인은 아렌트가 사회적인 것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넘긴 자리에서 ‘지식의 정치(politics of knowledge)’가 사라진다고 적었다. 어떤 지식을 객관으로 인정할 것인가가 곧 정치의 역할인데, 그 역할을 행정으로 넘기는 순간 정치는 끝난다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 비판을 받아들여 ESG 3단계 모델의 1단계 Facere가 어떤 지식 위에서 정책 문서가 만들어지는가를 묻지 않은 한계를 인정했다.

거버넌스 코드를 논할 때 같은 비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사회의 헌법 만들기에는 늘 외부 전문가의 자리가 있다. 사외이사를 포함하여 법률, 회계, 거버넌스 컨설팅, ESG 자문이 끌어오는 지식은 거의 항상 객관의 옷을 입고 들어온다.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 자본시장의 스탠다드(혹은 놈norm), 학계의 표준 등. 이 객관에 다른 객관을 마주 세우기는 쉽지 않다. 한국 중소기업 임직원 한 사람의 지식은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 앞에서 주관의 자리로 떨어진다. 이 떨어짐이 누적되면 헌법은 한쪽 객관만으로 만들어진다. 본문에서 언급한 복수성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한 회사 안에는 한 객관이 아니라 여러 객관이 마주 서 있고, 헌법은 그 여럿 사이의 짜임이어야 한다.

이 비대칭이 회사의 모습을 바꾼다. 상상해 보자. 어느 한국 중소기업이 거버넌스 컨설팅 회사의 손을 빌려 윤리 규정을 새로 만든다. 컨설팅 회사가 가져오는 표준은 미국과 영국과 독일의 사례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것을 한국 중소기업에 그대로 옮길 때 그 모양새는 일견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 짜임 안에 살아 움직여야 할 사람들 — 한국의 임직원 — 은 그 짜임에 들어와 있지 않다. 구성원을 품지 못하는 규정은 회사의 매일을 떠받치지 못한다. 일 년쯤 지나면 규정은 종이 위에서만 살아 있고 회사의 일상은 그 옆에서 따로 굴러간다.

여기서 임직원의 지식을 헌법의 짜임 안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의 과제가 따라 나온다. 누구나 함께 라는 일반론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절차가 필요하다. 그 절차의 자리가 다음 절의 일이다.

3.3 임직원의 지식이 들어오는 절차 — 세 장치

본문이 말한 세 장치 — 이사추천위원회·강화된 노사협의회·공동근로복지기금 — 가 제 기능을 해야 할 때다. 외부 전문가의 객관과 임직원의 객관이 한 자리에 모이도록 마련한 절차의 자리다.

이사추천위원회. 이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헌법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사추천위원회는 그 결정의 자리에 임직원의 시선이 들어오도록 마련한 절차다. 단순한 추천 권한이 아니다. 후보자가 한국 중소기업에서 무엇을 보아 왔는가, 임직원을 어떻게 대해 왔는가, 글로벌 표준의 무게를 한국의 기업 환경에서 어떻게 풀어낼 줄 아는가 — 이 물음을 임직원의 입장에서 던지는 절차다. 내외부 전문가가 이사회로 들어오는 통로에 임직원의 검증이 한 단계 더 놓인다. 이 한 단계가 외부의 객관을 한국 중소기업의 맥락으로 다시 풀어내는 자리다.

강화된 노사협의회. 일상의 의제가 헌법 만들기의 자리로 올라가는 통로다. 임직원이 매일 회사에서 겪는 일 — 작업장의 안전, 일의 양과 질, 보상의 짜임, 조직의 의사결정 양식 — 이 노사협의회를 거쳐 이사회로 올라간다. 노사협의회가 약하면 이 통로가 막히고 헌법은 위에서 본 회사의 모습으로만 만들어진다. 노사협의회가 제대로 작동하면 아래에서 본 회사의 모습이 헌법의 짜임 안에 들어온다. 두 모습이 한 헌법 안에 들어올 때 비로소 헌법은 한쪽 객관의 산물이 아닌 화음이 된다.

공동근로복지기금. 위 두 절차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임직원이 회사의 운명에 지속적으로 묶여 있어야 한다. 떠도는 임직원의 지식은 헌법 만들기의 과정에 참여하기 어렵다. 한 분기 일하고 떠나는 임직원의 지식은 헌법을 구성하는 재료로 굳어지지 못한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이 그 묶음을 마련한다. 단순한 복지를 넘어 임직원이 회사의 자본 소유권에 발을 디디는 자리다. 발을 딛으면 시선이 길어지고, 시선이 길어지면 헌법 만들기의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세 장치가 따로 일하지 않고 한 짜임으로 일해야 한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이 임직원을 회사의 운명에 묶고, 노사협의회가 일상의 사건과 상황을 정리해 올리고, 이사추천위원회가 그 내용을 헌법 만들기의 자리에 새긴다. 한 장치만 두면 흉내에 그친다. 셋이 함께 있어야 지배구조의 짜임이 모양을 갖춘다. 이 셋이 합쳐 본문이 말한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의 가장 기초적인 꼴을 이룬다.

3.4 잠정 단계의 솔직함 — 대주주의 의지에서 시작하는 한계

한 가지 솔직하게 인정할 것이 있다. 한국 기업 환경에서 이러한 지배구조의 짜임은 대주주의 의지 없이는 시작하기 어렵다. 우리 회사의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이라는 틀도 대주주의 결심이 만들어 낸 짜임이다. 임직원이 처음부터 자기 스스로 구상하고 자기 손으로 만들어 올린 짜임이 아니다.

한국에는 EOT는커녕 ESOP 같은 자본 민주화 제도가 충분히 정착해 있지 않다. 그 결핍을 확인한 경영자가 어쩔 수 없이 그 대안으로 공동근로복지기금과 커먼웰스를 세우고 노사협의회를 강화하고 이사추천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짜임은 모양을 갖추었지만 이 짜임은 임직원이 아니라 대주주의 의지에서 비롯했다.

이 잠정성에는 양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 시도가 빨리 자리잡는다. 대주주 한 사람이 결심하면 짜임이 빠르게 자리를 잡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짜임이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같은 사람의 결심이 바뀌면 시도도 흔들린다. 임직원이 동참하지 않으면 공허한 손짓에 그친다. 임직원이 스스로 빚어 올린 결실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이 잠정성을 가짜 평등으로 꾸미지 않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좋다. 짜임은 잠정이지만 그 잠정의 짜임 안에서 임직원의 자리가 점차 두툼해지도록 움직이는 거푸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 대주주가 가지고 있던 결정 권한을 차츰 이사추천위원회와 노사협의회와 공동근로복지기금의 자리로 옮겨야 한다. 이 옮김의 속도와 방식을 미리 정해 헌법에 새겨 두는 것이 좋다. 거푸집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를 옮겨 가는 거푸집으로. 그 옮김이 일어날 때 잠정성은 잠정인 채로 끝나지 않고 진짜 짜임으로 자란다.

본문 9.2절에서 살펴본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지적도 함께 환기할 필요가 있다.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이 누구를 임직원으로 받아들이는가의 물음은 헌법 만들기 과정에 계속 따라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그리고 협력업체의 자리. 이 물음은 6장 한국 중소기업의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다만 헌법을 만드는 자리에서 이 물음을 잊지 않고 적어 두지 않으면 헌법은 또 하나의 그늘 위에 놓인다. 이 물음을 헌법의 짜임 안에 잊지 않고 두는 일이 Facere의 마지막 양식이다.

이상이 시인의 자리, 이사회의 자리다. 헌법을 만든다. 헌법이 자리잡으면 비켜선다. 비켜선 자리에서 다른 음표들이 자기 음을 울리기 시작한다. 다음 장은 그 울림이 일어나는 첫 자리, 배우의 자리 — 경영진의 자리(Agere)로 옮겨간다.


4. Agere — 경영진의 자리

3장에서 헌법을 만드는 자리를 살펴보았다. 헌법이 자리잡으면 시인은 비켜선다. 그 비켜선 자리에 무대가 열린다. 이번 장은 그 무대 위 배우, 경영진의 자리 — Agere다.

4.1 짜인 헌법을 수행하는 일

경영진이 하는 일은 만들어진 헌법을 매일 수행하는 일이다. 사업의 운영, 영업과 투자의 결정, 시장에서의 실행, 위기 대응. 이 일들은 산물을 남기는 일이라기보다 행위 자체가 목적인 일이다. 본문에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하듯”이라 적은 자리가 여기다.

이 원리의 단순함을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영진은 새 헌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정관을 새로 쓰는 자리가 아니고 이사회 규정을 새로 만드는 자리가 아니다. 헌법은 이미 시인이 마련해 두었다. 경영진의 일은 그 헌법을 매일의 결정으로 수행하는 일이다. 시장에서 거래를 결정할 때, 사람을 채용할 때, 투자를 승인할 때, 위기에 대응할 때 — 그 모든 자리에서 이미 자리잡은 헌법이 어떻게 살아나는지가 매일 결판난다.

이 단순함이 곧 이 자리의 어려움이다. 매일의 결정은 날마다 새롭고 헌법은 늘 한 발 늦기 마련이다. 시장은 헌법이 미리 적어 두지 못한 결정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준수는 단순한 복사가 아니다. 헌법의 정신을 살피며 매일의 자리에 옮겨 풀어내는 일이다. 이 옮겨 풀어내는 일이 헌법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선까지가 Agere다. 그 선을 넘어 경영진이 헌법 자체를 자기 손으로 다시 쓰기 시작하면 분리가 무너진다.

4.2 흔드는 압력과 두 갈래의 갈림

경영진은 매일 헌법을 흔드는 압력 아래에 있다. 분기 실적의 압력, 시장의 단기 반응의 압력, 인수합병 타이밍의 압력, 위기 대응의 다급함 등. 이 압력들은 모두 헌법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풀어 쓰고 싶은 유혹을 매일 새로 낳는다. 보상 정책의 한 줄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싶고, 윤리 규정의 한 줄을 자기 결정에 맞게 좁혀 읽고 싶다. 이 유혹은 경영진의 결함이라기보다 그 자리 특유의 성격으로 보아야 한다. 자리에 따라오는 압력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경영진의 행위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갈래. 압력 아래에서 헌법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 쓴다. 정관의 한 조항을 자기 결정의 사후 합리화로 끌어 쓴다. 위원회 규정의 한 줄을 자기 결정을 통과시키는 데 유리한 쪽으로 읽는다. 이 끌어 쓰기가 한 번 일어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번엔 더 멀리 끌어 쓰고, 그 다음엔 헌법을 아예 자기 손으로 다시 쓰고 싶어진다. 경영진이 헌법을 만드는 자리로 올라가면 시인의 자리가 비고, 그 자리는 곧 다시 메워야 할 빈 자리로 남는다. 분리가 무너진다.

다른 한 갈래. 같은 압력 아래에서도 헌법을 정직하게 수행한다. 헌법이 답을 미리 적어 두지 않은 경우에는 헌법의 정신을 살피며 결정한다. 자기 결정이 헌법의 어느 자리를 시험하고 있는지 안다. 시험의 무게가 과하면 그 결정을 이사회로 가져간다. 헌법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 쓰지 않고 헌법 만드는 자리로 결정의 무게를 돌려보낸다.

두 갈래의 갈림은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분기 보고서 안의 한 줄, 여느 회의의 한 결정. 그 작은 행위들이 쌓여 회사가 나아가는 길이 갈린다. 이사회의 결정 자리(Facere)와 경영진의 결정 자리(Agere) 사이의 간격이 매일의 작은 결정 안에서 결판난다.

4.3 응답의 두 통로 — 정기 보고와 위원회

경영진이 다른 한 갈래로 가도록 도와주는 헌법의 장치는 두 가지다. 정기 보고와 위원회의 응답 구조가 그것이다.

정기 보고. 경영진이 매일 헌법 안에서 무엇을 결정하고 있는지 이사회가 정해진 주기로 검토한다. 보고가 정직하면 헌법이 매일의 결정 위에 살아 있다. 보고가 헌법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어 쓴 과정을 숨기면 이사회는 그 끌어 쓰기를 알지 못한 채 결재만 한다. 그러면 헌법은 종이 위에서만 살아 있고 회사는 그 옆에서 따로 굴러간다. 따라서 정기 보고의 방식을 결정의 결과에 그치지 않고 결정의 결과에 더해 그 결정이 헌법의 어느 자리와 호응하는가로 짠다. 이 한 끗 차이가 보고를 행정 기계에서 응답으로 옮긴다.

위원회의 응답 구조. 감사위원회와 리스크위원회와 인사위원회는 매일의 결정이 헌법의 정신과 멀어지지 않게 단속한다. 위원회는 매일의 결정에 끼어들지 않는다. 끼어들면 Agere를 침범한다. 그러나 결정의 누적이 헌법의 정신을 흔드는 신호가 보일 때 위원회는 그 신호를 이사회로 가져간다. 위원회는 경영진과 이사회 사이를 잇는 응답의 통로다. 이 통로가 막히면 두 자리가 따로 살게 된다.

두 장치가 함께 일하게 해야 한다. 정기 보고가 결정의 흐름을 펼쳐 놓고, 위원회가 그 흐름의 양상을 읽어 이사회의 자리로 올린다. 둘이 함께 있어야 분리가 응답으로 살아난다.

4.4 한 사람에게 두 자리가 모일 때 — 한국 중소기업의 결

여기까지의 짜임을 한국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한 가지 현실적 벽에 부딪힌다. 한국 중소기업에서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한 사람이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대주주가 CEO이고 동시에 이사회 의장이다. 시인의 역할(Facere)과 배우의 역할(Agere)을 한 사람이 수행한다. 분리는 사람의 분리가 아니라 머릿속 역할 분리가 된다.

이것은 짜임의 결함이라기보다 인정해야 하는 현실의 제약이자 극복해야 하는 잠정의 상태다. 비교적 작은 규모, 짧은 역사, 자본 시장의 짜임. 이 조건들이 한 사람에게 두 역할을 함께 부여한다. 이 현실을 부정하면 한국 중소기업이 좋은 지배구조를 세울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이 잠정의 모습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분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세 가지 방안을 정리해 둔다.

첫째, 양식의 분리. 같은 사람이 이사회 의장으로서 회의를 여는 자리와 CEO로서 매일의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같은 양식으로 흐르지 않게 한다. 이사회 의장의 자리에서는 경영진의 응답이 들어설 자리를 내어주는 양식을 지키며 회의를 이끈다. CEO의 자리에서는 헌법의 정신을 곁에 두는 양식을 지키며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두 양식이 한 사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자리로 갈라져 있게 한다. 양식이 갈라지면 한 사람 안에서 두 역할이 함께 살 수 있다.

둘째, 점진적 인적 분리의 약속. 회사가 자라면 두 역할을 두 사람이 나눠 맡는다. 이 나눠 맡음의 시점과 방식을 미리 정해 헌법에 새긴다. 3.4절에서 살펴본 움직이는 거푸집의 원리가 여기서도 일한다. 처음에 한 사람에게 모인 두 자리가 회사의 성장과 함께 점차 분리되도록 지배구조의 짜임이 스스로 자기를 옮긴다.

셋째, 위원회 역할 존중. 한 사람이 두 자리를 함께 맡는 동안에는 위원회의 역할을 더 두툼하게 한다.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노사협의회, 이사추천위원회가 모두 두 자리를 한 사람이 맡음으로써 경계가 취약해지는 분리를 바깥에서 떠받친다. 한 사람의 자리가 흔들릴 때 위원회의 자리가 헌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넷째, 아래로의 보고. 한 사람이 두 자리를 맡으면 위로의 보고가 힘을 잃는다. 보고하는 사람과 보고받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보고의 방향을 하나 더 열었다. 경영진이 다달이 경영리포트를 써서 전 임직원에게 배포한다. 이사회로 올라가는 보고 옆에 임직원에게 내려가는 보고를 나란히 둔다. 전 임직원이 경영진의 결정을 지켜보는 눈이 되면, 한 사람에게 모인 두 자리를 견제하는 힘이 회사의 바깥 아닌 안에서 자란다.

이 넷 가운데 첫째 — 양식의 분리 — 가 가장 어렵고 가장 무겁다. 같은 한 사람이 두 역할을 다른 양식으로 살아내는 일은 의식적인 단속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의 단속이 끊기면 억지로 분리한 두 자리가 슬며시 다시 한 자리로 모인다. 그렇게 되면 보통 헌법이 위협받고 분리는 무너진다.

4.5 정직하게 수행하는 일

경영진의 자리는 이 글의 다른 어떤 자리보다 단순하다. 만들어진 헌법을 정직하게 수행한다. 헌법을 자기 손으로 흔들지 않는다. 흔들고 싶은 순간이 오면 결정의 무게를 헌법 만드는 자리로 돌려보낸다. 매일의 압력 아래에서 이 단순함을 잃지 않는 일. 그 잃지 않음이 경영진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일이다.

분량이 짧다는 점이 이 자리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들어 두지 않은 헌법을 매일 만들어 가야 한다면 이 자리는 끝없이 길어진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 둔 헌법을 수행하는 자리라면 정직함만 단단히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다음 장은 매일 살아내는 자리 — Gerere, 의장과 위원회와 임직원이 살아내는 일상의 자리다. 4.3에서 살펴본 정기 보고와 위원회의 응답 구조가 다음 장에서 좋은 Gerere와 나쁜 Gerere의 갈림으로 한 번 더 깊어진다.


5. Gerere — 의장·위원회·일상의 양식

3장과 4장은 자리의 성격이 비교적 또렷했다. 헌법을 만드는 자리, 헌법을 수행하는 자리. 둘 다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가 분명했다. 5장은 그 성격이 다르다. Gerere는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의 자리다. 같은 일이 한쪽에서는 회사를 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회사를 죽인다. 같은 이사회가, 같은 감사위원회가, 같은 노사협의회가, 같은 ESG 보고서가 —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두 얼굴로 갈라진다. 본문 결론부에서 살펴본 좋은 Gerere와 나쁜 Gerere가 갈리는 거버넌스 코드의 가장 무거운 자리이다.

이 자리는 사상의 측면에서는 본문 7장 아감벤의 제스처가 거버넌스의 매일로 옮겨오는 자리이고, 비판의 측면에서는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의 절차 비판이 응답을 받는 자리이다. 그리고 한국 중소기업에서 가장 자주 무너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셋의 무게가 이 한 자리에 모인다.

5.1 살아내는 일은 매일의 양식이다

이사회의 산물(Facere)과 경영진의 결정(Agere)이 모두 자리잡았다고 가정해 보자. 헌법이 단단하고 매일의 결정은 정직하더라도 회사는 죽을 수 있다. 본문이 가져온 사례 — 삼풍백화점, 세월호, 옥시 가습기 살균제, 보잉 737 MAX — 는 그보다 더 무거운 사실을 보여 준다. Gerere가 비면 Facere와 Agere마저 형해화되어 끝내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다.

Gerere는 살아내는 일이다. 한 번 만들고 끝나지 않는다. 한 차례 실행하고 끝나지도 않는다. 매일의 양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본문이 아감벤을 빌려 풀어낸 제스처의 자리가 여기다. 제스처는 산물을 남기는 행위가 아니다. 본문의 말로 옮기면, 목적에 매인 행위가 아니라 수단 그 자체를 드러내는 행위다. 행위 그 자체가 양식이 되는 자리다. 회사의 의장이 매일 어떤 호흡으로 회의를 여는가, 감사위원회가 한 분기에 어떤 자리에서 어떤 물음을 던지는가, 노사협의회가 한 의제를 어떤 방향으로 다루는가, 윤리·컴플라이언스가 작은 위반을 발견했을 때 어떤 양식으로 처리하는가, 작업장에서 한 임직원이 안전 점검의 한 단계를 빠뜨리고 싶을 때 무엇이 그를 멈추게 하는가. 이 모든 자리에서 일어나는 양식이 모여 회사의 Gerere가 된다.

이 자리의 핵심은 주체가 흩어진다는 점이다. Facere는 이사회의 자리, Agere는 경영진의 자리. 주체가 또렷하다. 그러나 Gerere는 의장과 위원회와 임직원과 작업장의 한 사람까지 모두에게 흩어져 있다. 누구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회사의 모든 자리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이 흩어짐이 Gerere의 가장 큰 특징이다. 흩어진 채로 한 결을 이루는 일. 그 일이 회사의 양식이 되는 일.

5.2 좋은 Gerere와 나쁜 Gerere의 갈림

본문이 결론부에서 살펴본 명제를 여기에 다시 정리해 둔다. 같은 Gerere가 한쪽에서는 행정 기계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스처가 된다. 둘이 아예 다른 일이 아니라 같은 일의 두 얼굴이라는 점이 이 자리의 어려움이다.

나쁜 Gerere. 양식이 자리를 떠나 보고서로 굳어진다. 이사회는 경영 보고를 사후 청취하는 자리로 쪼그라든다. 감사위원회는 외부 감사인의 보고서를 읽는 자리로 쪼그라든다. 노사협의회는 회사가 정한 의제를 임직원 대표에게 통보하는 자리로 쪼그라든다. 윤리경영위원회는 작은 위반을 처리하는 행정 절차의 자리로 쪼그라든다. ESG 보고서는 종이 문서로 책장 한 켠에서 앞으로 쌓일 먼지를 기다린다. 자리마다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흔적은 남는다. 그러나 그 흔적은 종이 위에만 남고 회사는 그 옆에서 따로 굴러간다. 효율의 관점에서는 어쩌면 이것이 가장 매끄러운 모습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매끄러움 아래에서 회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

좋은 Gerere. 양식이 매일 살아 있다. 이사회는 헌법의 정신과 매일의 결정 사이의 정합성을 살핀다. 이미 실행한 결정뿐만 아니라 앞으로 실행할 계획의 정합성까지 살핀다. 감사위원회는 외부 감사인의 보고서가 짚지 않은 자리를 묻는다. 노사협의회는 회사가 정한 의제 옆에 임직원이 가져온 의제를 함께 논의한다. 윤리경영위원회는 아무리 작은 위반이라도 그것이 왜 일어났는가를 따져 묻는다. ESG 보고서는 그 보고서가 회사의 어느 자리를 살리고 있는가를 묻는 살아 숨 쉬는 기록이 된다. 이들을 한 줄로 묶으면, 모든 자리가 자기 일을 한 차례 더 묻는 양식이다. 그 한 번 더 물음이 행정 기계와 제스처를 가른다.

두 Gerere의 갈림은 결정의 형태가 아니라 양식의 형태에서 일어난다. 같은 회사가 어떤 분기에는 좋은 Gerere로 살고 다음 분기에는 나쁜 Gerere로 떨어질 수 있다. 같은 위원회가 어떤 회의에서는 살아 있고 다음 회의에서는 형식으로 굳을 수 있다. 갈림은 미세하고 매일 일어난다. 그 갈림을 매일 단속하는 일이 Gerere의 자리가 짊어진 짐이다.

이 갈림의 뿌리에는 본문 4장에서 살펴본 한 통찰이 있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본 무사유 — 손익은 빈틈없이 따지되 의미는 묻지 않는 사고 — 가 그것이다. 나쁜 Gerere로 굴러 떨어지는 자리는 늘 이 무사유의 자리다. 회의는 차분히 흘러가고 보고서는 깔끔히 쌓이고 KPI는 한 칸씩 채워지지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어디에도 살아 있지 않다. 자리들은 각자의 업무를 처리하지만 그 업무의 의미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아이히만이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한 것이 곧 이 모습이다. 좋은 Gerere가 매번 한 차례 더 묻는 그 물음은 무사유를 거슬러 의미를 찾는 일이다.

5.3 의장의 자리 — 세 가지를 단속하는 자리

Gerere의 자리에서 가장 무거운 한 자리를 먼저 살펴본다. 이사회 의장의 자리다. 본문에 꾸준한 조정과 감독이라 쓴 자리다. 의장은 이사회의 한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이사회 자체의 양식을 떠받치는 자리다. 의장이 어떤 호흡으로 회의를 운영하는가가 이사회 전체의 Gerere를 결정한다.

좋은 의장은 항상 세 가지를 단속한다.

첫째, 자리의 분리를 단속한다. 회의가 Agere의 자리로 미끄러지지 않게 한다. 이사들이 매일의 경영 결정에 끼어들고 싶어질 때 의장은 ‘그 결정은 경영진의 몫이고 우리 일은 헌법의 정신을 살피는 것’이라는 정체성을 되살린다. 의장이 이 원칙을 놓치면 이사회 전체가 Agere의 자리로 떨어진다. 떨어진 이사회는 일상 경영에 끼어들고, 그 순간 시인은 시인도 배우도 아닌 돌연변이가 된다.

둘째, 의제의 방향을 단속한다. 매 회의의 의제가 결재해야 할 일에서 물어야 할 일로 옮겨 가도록 한다. 결재의 자리에는 이미 답이 마련되어 있다. 위원회가 검토했고 경영진이 권고했다. 의장이 이것들을 그대로 받아 결재만 한다면 회의는 행정의 자리가 된다. 좋은 의장은 결재의 자리 옆에 물어야 할 자리를 둔다. 이번 분기 결정의 누적이 헌법의 어느 자리를 시험하고 있는가, 어떤 자리가 점차 비어 가고 있는가, 어떤 신호를 위원회가 놓치고 있는가. 이 물음이 살아 있을 때 회의는 양식이 된다.

셋째, 응답의 통로를 단속한다. 의장은 이사회와 경영진 사이, 이사회와 위원회 사이, 이사회와 노사협의회 사이의 통로가 막히지 않게 한다. 통로가 막히면 자리들이 따로 살게 된다. 따로 사는 자리들 사이에서는 공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의장은 회의 안에서뿐 아니라 회의 밖에서도 통로를 살핀다. 이사들이 정기 보고서 너머에서 임직원의 실제 모습을 만나는 자리가 있는지, 위원회의 신호가 이사회로 올라오는 통로가 막히지 않았는지, 노사협의회의 의제가 헌법 만들기의 자리로 올라가는 통로가 살아 있는지. 이 통로 점검이 의장의 매일이다.

한국 중소기업 환경에서 이 셋을 단속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4.4절에서 살펴보았듯 한국 중소기업의 의장은 자주 CEO를 겸한다. 의장의 자리(Gerere의 단속)와 CEO의 자리(Agere의 실행)가 한 사람에게 모인다. 그 한 사람은 머릿속에서 ‘지금은 의장의 자리’, ‘지금은 CEO의 자리’를 매번 분리해야 한다. 이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의장의 자리가 CEO의 자리로 빨려 들고, 그렇게 되면 자리의 분리를 단속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Gerere의 단속자가 사라지면 행정 기계로 전락하는 일이 빠르게 일어난다.

5.4 위원회의 자리 — 세 위원회의 역할

의장의 자리 옆에서 위원회가 일한다. 감사위원회·리스크위원회·인사위원회. 세 위원회는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의 양식을 단속한다.

감사위원회. 외부 감사인의 보고서를 받아 검토하는 자리이지만 그 검토에 머물면 행정 기계가 된다. 감사위원회의 좋은 Gerere는 외부 감사인이 짚어내지 않은 것을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외부 감사는 정해진 절차로 회사를 본다. 그 절차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따지는 자리 — 회계 처리의 결정 양식, 보고 라인의 응답 양상, 작은 거래의 누적이 만드는 패턴 — 가 감사위원회의 자리다. 이 물음이 약해지면 감사는 형식의 자리로 굳는다.

리스크위원회. 리스크위원회는 회사의 짜임에 따라 윤리경영위원회와 안전보건위원회 등으로 나누어 둘 수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일하는 방식은 같다. 리스크는 사건이 아니라 양식이다. 한 차례의 큰 사고가 회사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죽이는 것은 작은 신호의 누적이다. 본문이 살펴본 보잉 737 MAX의 사례가 그렇다. 안전 우선의 문화가 수익 압박에 밀려 무너지는 자리에서 두 차례의 추락이 일어났다. 리스크위원회의 좋은 Gerere는 큰 사건을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 작은 신호를 매일 읽는 자리다. 신호가 모이는 양식, 신호가 보고 라인을 거쳐 가다 사라지는 과정, 신호가 결정으로 옮겨지지 않고 굳는 패턴. 이 양상을 매일 살피는 일이 리스크위원회가 해야 하는 진짜 단속이다.

인사위원회. 상벌은 가장 빠르게 행정 기계로 떨어지는 자리다. 외부 컨설팅 회사가 가져온 시장 비교 데이터, KPI의 한 표, 성과의 한 점수. 이들이 모이면 결정은 자동화된다. 좋은 인사위원회는 자동화된 결정 옆에 ‘그 결정이 어떤 영향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둔다. 이 인사의 방향이 어떤 행위를 격려하고 어떤 행위를 무게 없이 흘려보내는가, 어떤 자리의 결정을 더 과감하게 하고 어떤 자리의 결정을 더 보수적이게 만드는가. 상벌은 행위의 양식을 빚는 자리다. 그 영향을 단속하는 일이 인사위원회의 Gerere다.

세 위원회가 따로 일하지 않는다. 한 신호가 감사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리스크의 눈에 보일 수 있고, 리스크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인사의 눈에 보일 수 있다. 세 위원회 사이의 응답 통로가 살아 있어야 한 자리에서 놓친 신호가 다른 자리에서 잡힌다. 이 응답이 끊기면 세 위원회가 각자의 보고서만 만드는 자리로 줄어든다. 의장의 자리에서 살펴본 통로의 단속이 위원회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하는 것이다.

5.5 노사협의회의 자리 — 하버마스의 비판과 응답으로서의 결정

이번 절은 가장 날 선 비판과 마주하는 자리다. 본문 9.4절에서 살펴본 하버마스의 비판에 거버넌스 설계가 응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의 비판은 이러했다. 아렌트의 정치는 시작행위는 강조하지만 합의에 이르는 절차가 흐릿하다. 광장은 매일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작과 표현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기업은 매일 결정해야 한다. 합의가 어려운 자리에서도 누군가는 책임지고 결정해야 한다. 본문에 “이 비판이 기업 경영자에게 무겁게 다가오는 까닭”이라 적은 이유다.

이 무거움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자리가 노사협의회다. 노사협의회는 합의의 자리인 동시에 결정의 자리다. 합의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결정으로 옮겨 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회사의 매일은 합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 긴장 — 합의와 결정 사이의 긴장 — 이 노사협의회의 운영 양식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

이 긴장을 다루는 한 가지 방식을 본문에서 언급했다. 응답으로서의 결정. 합의 없는 결정이 아니라, 합의에 이르지 못한 자리에서 누군가가 상대의 목소리를 받아 안고 결정하는 양식이다. 이를 노사협의회의 운영 양식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제를 양쪽이 함께 짠다. 회사가 정한 의제만 다루는 자리는 통보의 자리에 그치기 십상이다. 임직원 대표가 가져온 의제가 회사의 의제 옆에 같은 무게로 놓일 때 비로소 협의의 가능성이 살아난다. 이 운영 양식을 단속하는 것이 노사협의회의 첫 과제이다. 본문에 언급한 복수성이 노사협의회의 일상에 살아 나오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둘째, 토의 시간을 미리 짠다. 합의가 어려운 의제일수록 결정의 압력은 시간을 촉박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시간이 촉박해지면 합의 시도 자체가 형식이 된다. 좋은 노사협의회는 토의 시간을 의제마다 미리 짠다. 한 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의제와 두 회의·세 회의에 걸쳐 다뤄야 할 의제를 미리 정해둔다. 시간을 미리 짜는 일이 합의의 진짜 가능성을 연다.

셋째,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의 결정 양식을 미리 정한다. 만약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누가 어떤 책임으로 결정하는가. 이 절차가 비어 있으면 합의 실패가 곧 노사협의회의 실패가 된다. 좋은 헌법은 이 경우를 미리 대비한다. 헌법이 미리 합의 실패의 결정 양식까지 적어 둔다는 말이다. 합의 실패 시 결정 권한이 어디로 옮겨지는지, 그 결정이 어떤 자리에서 사후 검토되는지, 검토한 내용을 어떻게 다음 회의로 가져오는지. 이 절차가 살아 있으면 합의 실패가 미결 의제가 쌓이는 협곡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넷째, 결정의 사후 검토 자리를 마련한다. 결정은 결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결정이 회사의 매일에서 어떻게 살아나고 있는지를 다음 회의에서 다시 들추어 본다. 임직원의 행동이 결정의 매일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어떻게 다시 손질할 것인지. 이 사후 검토 자리가 없으면 결정은 한 차례의 사건으로 굳고 노사협의회는 사건 처리의 자리로만 줄어든다. 사후 검토의 자리를 두는 일이 결정을 과정으로 풀어내는 마지막 양식이다.

이 네 양식이 노사협의회를 합의를 흉내내는 자리에서 응답으로서의 결정을 하는 자리로 만든다. 본문이 9.4절을 닫으며 인용한 김세원의 한 줄 — 아렌트는 합의를 목적으로 하는 토의나 의사소통 절차를 강조하지 않으나, 합의로 해소할 수 없는 근원적 복수성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하버마스와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 이 거버넌스 설계의 과정에서 이 한 매듭으로 풀린다. 합의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되 합의를 향한 시도가 진지한 자리. 합의에 이르지 못한 자리에서도 복수성을 죽이지 않는 결정의 양식. 이 둘이 함께 짜인 틀이 노사협의회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노사협의회를 바라볼 때 본문 6장에서 살펴본 슈미트의 적-친구 구도와 아렌트의 동료 구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노사를 마주 선 진영으로 보는 인식과 한 회사 안의 동료로 인식하는 관점이 항상 경쟁한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자의 이익을 두고 대치하며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구도와, 회사라는 공동체의 살림을 함께 짊어진 자리에 나란히 선 구도.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의 짜임은 후자의 인식 위에서만 살아난다. 본문에서 말한 동료애가 드러나는 곳이 바로 여기다. 의제의 발의도, 합의를 향한 토의도, 응답으로서의 결정도 결국 동료 사이의 일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노사협의회의 양식이 적-친구 구도가 되는 순간 모든 절차가 형식이 된다. 오직 동료의 구도 위에서 짜일 때만 그 절차에 숨이 돈다.

이론은 여기까지다. 실제 있었던 회의 하나를 적는다.

우리 회사는 수도권 끝자락에 있다. 멀리서 다니는 직원이 많아 회사는 기숙사를 운영한다. 그런데 부동산 계약은 장기 계약이라 수요가 늘 때마다 방을 늘릴 수 없다. 그래서 규정은 독신자에게 2년 거주 후 퇴소를 원칙으로 삼았다. 2년이면 회사 가까이에 살 곳을 마련하기에 모자라지 않다고 보았고, 공실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채용 계획에 반영하려는 뜻도 있었다. 어느 회의에서 노동자측 위원이 이 연한을 4년 이상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2년을 넘겨 거주하는 직원이 여럿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했거나 구하려는 집이 비싸다는 사정이었다.

의견이 갈렸다. 찬성하는 위원들이 말했다. 거주비가 비싸다. 대중교통이 닿기 어려운 자리라 인재를 데려오려면 기숙사가 있어야 한다. 2년 넘게 기숙사에 살며 다니는 직원이라면 오래 일할 사람인데 규정 때문에 놓치면 회사의 손해다. 반대하는 위원들이 답했다. 2년은 출퇴근 시간과 주거비를 아끼는 혜택이고 집을 구하기에 모자란 시간이 아니다. 그리고 규정의 그늘이 있다. 입주 기준이 편도 대중교통 1.5시간인데, 1.2시간 걸리는 직원은 기숙사가 필요할 만큼 멀리 살면서도 기준에 못 미쳐 시간과 체력을 쓰고 주거비까지 부담한다. 연한을 늘리면 이 사람들의 자리가 더 좁아진다.

표가 비슷하게 갈렸고 근거가 다 일리 있었다.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협의회 규정은 이런 경우를 미리 적어 두지 않았다. 그동안 대부분 원만하게 합의해 온 탓에 규정의 빈자리를 아무도 몰랐고, 이 회의가 그 빈자리를 처음 드러냈다. 의장이 제3안을 냈다. 입주 기준을 손보아 아깝게 밀려나는 사람이 없게 하되, 연한은 살리고, 살린 규정은 지킨다. 표결에 부쳤고 다수가 동의했다.

결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한이 2년이 맞는지 3년이 맞는지는 정하지 않았다. 총무부서가 실수요 직원을 깊이 조사해 다음 회의에 보고하고 그때 정하기로 했다. 그날 회의에서 배웠다. 부딪힘은 규정을 굳히지 않았다. 규정을 자라게 했다. 규정을 바꾸게 한 힘은 연장을 요구한 목소리가 아니라 규정 바깥에 서 있던 사람의 발견이었다.

5.6 윤리·컴플라이언스와 작업장의 자리

위원회와 노사협의회 위에 한 자리가 더 있다. 매일의 작업장이다. 윤리 경영은 두 층에서 작동한다 — 위원회 차원의 단속(5.4절 윤리경영위원회)과 작업장 차원의 매일의 실천(이 절)이다. 의장과 위원회와 노사협의회의 양식이 모두 단단해도 매일의 작업장에 윤리·컴플라이언스 운영이 비어 있으면 Gerere는 죽는다. Gerere를 진짜로 살아내는 자리는 회의실이 아니라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Gerere의 모습은 단순하다. 한 임직원이 안전 점검의 한 단계를 빠뜨리고 싶을 때 무엇이 그를 멈추게 하는가? 한 거래가 윤리의 원칙을 시험할 때 누구의 어떤 양식이 그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는가? 작은 위반을 발견했을 때 그 위반이 보고 라인의 어느 자리에서 막히는가? 어느 자리에서 살아 위로 올라가는가?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회사의 진짜 Gerere다.

윤리·컴플라이언스의 좋은 Gerere는 위반의 자리에 처벌의 양식만 남기지 않는다. 처벌은 행정의 산물일 뿐이다. 좋은 양식은 처벌 옆에 ‘왜 일어났는가?’를 반드시 묻는다. 그 위반이 어떤 상황의 누적에서 일어났는지, 그 상황을 만드는 다른 자리가 어디인지, 그 자리를 어떻게 다시 풀어야 하는지. 처벌과 물음이 함께 있는 양식이 윤리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짜 단속이다. 이 왜 일어났는가를 묻지 않는 자리가 곧 본문 4장의 무사유가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다.

여기서 본문이 들었던 사례가 가장 무겁게 닿는다. 삼풍·세월호·옥시·보잉 사례에서 모두 규정과 절차(Facere)는 있었다. 안전 매뉴얼이 있었고 위기 대응 절차가 있었고 품질 인증이 있었고 안전 우선의 문서가 있었다. 그러나 그 규정을 살아내는 Gerere가 없었다. 매뉴얼은 책장에 있었고 절차는 종이 위에 있었다. 그 사이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 거리 — Facere의 문서와 Gerere의 작업장 사이의 거리 — 를 모든 Gerere의 자리에서 매일 점검해야 한다.

이 단속과 점검이 회사의 문화라 불리는 자리다. 본문 10.3절에서 “무엇보다 기업문화 그 자체”라 쓴 것이다. 문화는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행위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의장의 회의에서, 위원회의 회의에서, 노사협의회의 회의에서, 작업장의 점검에서, 윤리의 단속에서 — 같은 양식이 매일 반복될 때 그 양식이 문화로 자란다. 문화는 행위의 양식이고 Gerere는 그 양식의 다른 이름이다.

5.7 좋은 Gerere는 어떻게 자라는가

한 가지 물음으로 이번 장을 마무리한다. 좋은 Gerere는 어떻게 자라는가?

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좋은 Gerere는 명령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의장이 “우리는 좋은 Gerere로 가야 한다”고 선포한다고 해서 좋은 Gerere가 자리잡지 않는다. 그 선포 자체가 행정 기계의 첫 자리다. 좋은 Gerere는 자리들 사이의 응답에서 자란다. 의장의 목소리를 위원회가 받고, 위원회의 목소리를 노사협의회가 받고, 노사협의회의 목소리를 작업장이 받고, 작업장의 목소리가 다시 의장의 자리로 올라오는 응답의 순환에서 서서히 자라난다.

이 순환이 본문 5장의 권력론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자리다. 권력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자리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자리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받아 안는 응답의 양식 안에서 권력이 매일 새로 발생한다. 그 새 발생이 회사의 Gerere로 정착한다. 이렇게 정착한 Gerere가 회사의 양식이 된다.

같은 Gerere가 한쪽에서는 행정 기계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스처가 된다. 그 갈림은 매일 일어난다. 어느 한 사람의 결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자리들 사이의 응답이 매일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에서 갈린다. 살아 있는 응답은 Gerere를 제스처로 키우고, 죽은 응답은 Gerere를 행정 기계로 떨어뜨린다.

이 응답이 막는 것이 곧 본문 4장의 무사유다. 5.2절에서 짚었듯 나쁜 Gerere의 뿌리에는 손익은 빈틈없이 따지되 의미는 묻지 않는 사고가 있다. 무사유는 한두 사람의 악의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자리들 사이의 응답이 끊긴 자리에서 자란다. 의장의 물음이 위원회에 닿지 못하고 작업장의 목소리가 이사회로 올라오지 못하는 자리. 그 끊긴 자리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 업무만 처리하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Gerere를 키우는 일은 곧 무사유를 막는 일이다. 응답의 순환을 매일 살려 두는 길 말고 무사유를 막는 다른 길은 없다. 거버넌스 코드가 끝내 지키려는 것이 이 한 가지다.

이 응답의 살아 있음이 한국 중소기업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살피는 것이 다음 장의 일이다. 6장은 한국 중소기업에서 삼층구조 전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살펴본다. 작은 규모, 짧은 역사, 가족 경영의 그림자, 협력업체와의 거래 관계, 정치경제학의 호응이 한 자리에서 작동하는 자리. Gerere가 가장 자주 무너지는 자리이자 가장 빠르게 살아날 수 있는 자리다.


6. 한국 중소기업 현실에 맞춘 변형

3장부터 5장까지 삼층구조의 세 자리를 풀어 살펴보았다. 이사회, 경영진, 의장과 위원회와 일상의 양식. 이 셋의 자리를 기업지배구조의 기본틀로 삼았다. 이번 장은 그 기본틀을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로 가져온다. 추상의 도식이 구체의 현실에서 어떤 모양으로 변하는지 살피는 일이다. 부속 문서가 본문보다 한 발 더 한국 중소기업의 자리로 내려가는 장이다.

한국 중소기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작은 규모, 가족 경영의 그림자, 짧은 역사, 자본 시장의 빈약함, 협력업체 관계의 무게. 이 특징들이 거버넌스의 기본틀을 그대로 옮기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본틀이 닿지 못하는 자리를 새로 열기도 한다. 이 두 면을 함께 보아야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이 장은 삼층구조 자체를 다시 풀지 않는다. 그 원리는 3·4·5장에 이미 새겼다. 이 장은 세 층위가 한국 중소기업의 특징과 만날 때 어떤 변형이 일어나는지를 다섯 가지 각도로 살핀다. 작은 규모, 정치경제학의 호응, 누가 임직원인가라는 물음, 가족 경영과 짧은 역사와 협력업체 관계, 잠정성과 진화가 그것이다.

6.1 작은 규모 — 슈마허의 good work

본문 10장 도입부에서 살펴본 슈마허의 통찰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한국 중소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슈마허가 말한 good work는 단순히 좋은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의 시작과 끝을 한 사람이 보는 것, 일의 의미가 노동의 매일 안에서 살아 있는 것, 일의 결과가 사람의 손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대기업에서 일은 잘게 나뉜다. 한 사람이 자기 일의 시작은 보지만 끝은 보지 못한다. 자기 일의 의미는 알지만 그 결과는 멀리 있다. 자기 일의 결과는 보지만 그 결과가 어떤 자리에 닿는지는 모른다. 분업의 효율은 살아나지만 good work가 자랄 여지는 사라진다. 슈마허가 지적한 것이 이것이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다르다. 한 임직원이 자기 일의 시작과 끝을 본다. 자기 손이 만든 산물이 시장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다. 그 산물을 받은 고객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는다. 자기 일이 회사 전체의 짜임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안다. 분업이 한 사람의 손을 떠나지 않는 자리에 머문다. good work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환경이다.

이 특징이 거버넌스에도 똑같이 호응한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이사회와 경영진과 임직원이 같은 공간을 산다. 의장이 작업장의 임직원을 매일 본다. 노사협의회의 임직원 대표가 이사회의 결정을 직접 받는다. 위원회의 보고서가 종이 위에 머물지 않고 작업장의 양식으로 빠르게 옮아간다. 응답의 통로가 짧다. 통로가 짧으면 응답이 살아 있기 쉽다.

그러나 같은 작은 규모가 어려움을 낳기도 한다. 분리는 어렵고 응답은 쉽다. 응답이 쉬운 자리에서 분리가 무너지기도 쉽다. 의장이 작업장의 임직원을 매일 보는 환경에서 의장은 매일의 경영(Agere)에 끼어들기도 쉽다. 노사협의회의 임직원 대표가 이사회의 결정을 직접 받는 자리에서 그 결정의 책임이 노사협의회로 넘어가기도 쉽다. 통로가 짧기에 통로 자체가 흐려진다.

작은 규모는 good work의 자리이자 응답이 쉬운 자리이지만 동시에 분리가 무너지기 쉽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 중소기업은 지배구조를 설계할 때 이 양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응답을 살리되 분리를 잃지 않는 모습. 이것이 어쩌면 한국 중소기업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6.2 정치경제학의 호응 — 폴라니와 케인즈

본문 10장 도입부에서 살펴본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과 케인즈의 통찰이 한국 중소기업에서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본다.

폴라니는 시장이 사회를 잡아먹는 자리에서 사회가 시장을 다시 묶는 운동이 일어난다고 적었다. 시장의 운동에 사회가 응답하지 않으면 사회 자체가 무너진다. 19세기 유럽이 그러했고 20세기의 여러 국가가 그러했다. 시장이 사회의 일부로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를 자기 논리 안으로 끌어들일 때 사회의 응답이 일어난다.

이 원리가 임직원공동소유기업에서 살아난다. 임직원이 회사의 자본 소유권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시장이 자본의 권리만 보호하고 노동의 권리를 끌어내리는 흐름을 되돌리는 일이다. 자본은 자본의 자리에 있고 노동은 노동의 자리에 있되 한 회사 안에서 두 자리가 한 사람의 입장에서 만나도록 짜는 일. 이 묶음이 한국 중소기업에서 가능한 폴라니적 응답이다.

케인즈의 통찰도 같은 지점에 힘을 불어넣는다. 케인즈가 말했듯 변화에서 가장 힘든 일은 새것을 생각해 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진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깨야 할 가장 질긴 틀은 경영을 곧 단기 실적 관리로 여기는 통념이다. 이 틀을 벗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일자리라는 장기의 짜임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많은 한국 중소기업이 단기 실적의 압력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사이의 긴장에 시달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긴장을 거버넌스 코드는 어떻게 다루는가. 일단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단기 결정의 자리에서 장기 짜임의 모습을 매번 묻는 양식. 분기 보고가 단기 실적만 정리해 올리지 않고 그 분기의 결정이 오래 지속 가능한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함께 정리한다. 인사위원회가 단기 KPI만으로 결정하지 않고 그 보상의 효과가 장기 행위의 양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묻는다. 이 매번의 물음이 단기와 장기의 긴장을 짜임 안에 살려 둔다.

폴라니와 케인즈의 통찰은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에서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시장의 자리에 사회의 자리를 마주 세우는 일. 단기의 자리에 장기의 자리를 마주 세우는 일. 거버넌스 코드는 이 마주 세움이 매일 일어나도록 짜는 거푸집이다.

6.3 누가 임직원인가 — 랑시에르의 비판과 응답

본문 9.2절에서 살펴본 랑시에르의 비판이 한국 중소기업에 가장 무거운 물음으로 다가온다.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이 누구를 임직원으로 받아들이는가, 곧 랑시에르가 몫 없는 자들이라 부른 사람들을 어디까지 끌어안는가의 물음이다.

회사 안에는 여러 얼굴들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그리고 회사 바깥에 있지만 회사의 일을 떠받치는 협력업체와 외주 노동자.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이 임직원을 어디까지로 보는가에 따라 헌법의 내용이 달라진다.

두 길이 있다. 한 길은 회사 안의 모든 자리를 임직원으로 받아들이는 길이다. 정규·비정규, 직접·간접, 협력업체와 외주까지 모두를 회사의 자본 소유권에 발을 디디게 한다. 이 길은 랑시에르의 비판에 가장 또렷하게 응답하는 길이다. 그러나 회사의 짜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누가 회사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지, 누가 회사의 운명에 묶여 있는지의 자리가 흐려진다. 짜임이 흔들리면 헌법 자체가 자리잡지 못한다.

다른 한 길은 직접고용 정규직만 임직원으로 받아들이는 길이다. 회사의 짜임은 단단하지만 헌법은 회사 바깥의 자리를 그늘로 둔다. 그 그늘 위에 헌법이 놓인다. 랑시에르의 비판에 응답하지 못한다.

두 길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내 보자. 첫 단계는 직접고용 임직원에게 자본 소유권을 열되, 그 짜임이 협력업체와 외주의 자리에 어떤 효과를 만드는지를 매 분기 살핀다. 이 길은 당장의 결정을 미루는 것이나 그 잠정성을 움직이는 거푸집의 취지로 짠다. 첫 단계의 자리가 단단해지면 다음 단계로 자리를 넓힌다. 협력업체의 임직원이 우리 동료의 자리로 넘어오는 흐름, 간접고용의 임직원이 직접고용으로 넘어오는 흐름. 이 옮김의 속도와 방식을 헌법에 미리 새겨 둔다.

그 속도는 회사마다 다르다. 한 회사가 협력업체와의 거래 관계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그 자리에서 자기 회사의 짜임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가가 다르다. 그러나 그 속도가 회사마다 다르다고 해서 움직이는 거푸집의 취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방향은 또렷해야 한다. 매 분기 그 방향의 상태를 점검하는 양식이 노사협의회와 이사회에 살아 있어야 한다.

이 물음의 바닥에는 본문 6장에서 살펴본 구도가 깔려 있다. 누가 임직원인가는 결국 누가 동료인가를 묻는 일이다. 슈미트의 자리에서 보면 회사 바깥의 사람은 비용을 다투는 상대이고, 아렌트의 동료의 자리에서 보면 공동의 일을 함께 짊어진 사람이다. 임직원의 자리를 넓힌다는 것은 동료의 테두리를 넓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거푸집이 매 단계 넓히려는 것이 바로 이 테두리다. 다음 절에서 살펴볼 협력업체 관계도 같은 물음 위에 놓인다.

6.4 가족 경영, 짧은 역사, 협력업체 관계

한국 중소기업 현실에서 거버넌스 코드가 마주해야 하는 또 다른 특징 셋을 살핀다. 가족 경영의 그림자, 짧은 역사, 협력업체 관계.

가족 경영의 그림자. 많은 한국 중소기업에서 회사의 헌법이 가족의 결정 양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가족의 한 사람이 회사의 의장이고 다른 한 사람이 경영자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이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회사의 결정권자와 가족의 결정권자가 한 자리에 묶인다. 이 묶음은 회사의 헌법이 가족의 관계 안에서 왜곡될 위험을 매일 새로 만든다.

그러므로 한국 중소기업에 맞는 거버넌스 코드는 이 점을 짚어 두어야 한다. 가족 안의 관계와 회사 안의 관계를 양식으로 가르는 일. 가족 안의 결정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회사의 결정은 회사에서 일어난다. 같은 한 사람이 두 자리를 함께 맡더라도 두 자리의 양식이 다르게 흐르도록 짠다. 가족 안에서 받은 결정이 회사의 자리로 옮겨 갈 때는 이사회의 자리를 거치도록 한다. 이 거침이 없으면 가족의 결정이 회사의 헌법으로 곧장 옮겨진다.

짧은 역사. 많은 한국 중소기업이 한 세대 안에 태어나 자랐다. 회사의 헌법이 한 세대의 결정으로만 구성된 경우 헌법의 정신이 창업자 한 사람의 생각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나면 헌법 자체가 흔들린다.

거버넌스 코드는 누적의 결정으로 헌법을 자라게 해야 한다. 한 세대의 결정이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헌법이 한 사람의 결정에서 조직의 짜임으로 옮겨 가도록 한다. 짧은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한 사람이 회사의 헌법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일을 막는 것이다. 한 사람의 결정이 헌법에 새겨질 때 그 새김을 다음 세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협력업체 관계.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 한국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협력업체다. 대기업이 정한 가격, 대기업이 정한 납기, 대기업이 정한 품질 기준 안에서 일을 한다. 그래서 회사의 거버넌스가 대기업의 결정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대기업이 단기 결과를 압박하면 협력업체의 장기 짜임이 흔들린다. 대기업이 비용을 압박하면 협력업체 임직원의 자리가 좁아진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거버넌스 코드가 더욱 중요해진다. 외부의 압력을 회사의 헌법으로 곧장 옮기지 않는 일. 대기업의 결정이 협력업체의 헌법을 흔들 때, 그 흔듦이 노사협의회와 이사회의 자리를 거쳐 회사의 결정으로 옮겨 가도록 한다. 한 거래의 결정이 회사의 헌법을 흔드는 자리에서는 그 결정의 무게를 이사회의 자리로 돌려보낸다. 회사의 헌법을 외부의 압력에 따라 매번 풀어 쓰지 않게 단단히 잡는 일이다.

협력업체 관계에서도 본문 6장에서 다룬 개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쪽은 대기업과 협력업체를 적과 친구로 인식한다. 가격과 납기와 품질 기준을 두고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구도다. 다른 한쪽은 둘을 공급망 안의 동료로 인식한다. 두 회사가 한 산업의 짜임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 함께 선 자들로 나란히 서는 구도다.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에서 협력업체 관계는 종종 전자의 구도에 놓이고 그래서 생기는 부채를 보통 대기업이 아니라 협력업체가 진다. 이 비대칭 위에서 협력업체가 동료의 구도를 먼저 꺼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버넌스 코드는 회사 안에서만이라도 그 구도를 단속해야 한다. 거래의 결정이 임직원의 자리를 비용으로만 다루지 않게 단속하는 일이, 곧 회사 안에서나마 동료 의식을 살리는 일이다.

6.5 잠정성과 진화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 앞에서 거버넌스 코드는 한 번에 자리잡기 어렵다. 처음에는 대주주의 의지에서 시작하고 작은 규모에서 응답이 쉽게 살아나지만 분리 역시 쉽게 흔들린다. 임직원의 자리는 좁다. 가족 경영의 그림자와 짧은 역사와 협력업체 관계가 헌법을 흔든다.

이 모든 것이 한 자리에 모인다. 거버넌스 코드는 잠정의 자리에서 시작해 점차 진화해야 한다. 첫 단계의 짜임이 자리잡으면 다음 단계로 자리를 넓힌다. 임직원의 자리를 넓히고, 가족 안의 자리에서 회사 안의 자리를 떼어내고, 한 사람의 결정에서 누적의 결정으로 헌법을 옮기고, 외부의 압력을 회사의 헌법에서 단속한다.

이 진화의 방식을 헌법에 미리 새겨 두는 일이 한국 중소기업이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건설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이다. 3.4절에서 살펴본 움직이는 거푸집의 원리가 6장 전체를 관통한다. 회사의 헌법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매 단계 자기를 옮겨 가는 거푸집으로 짠다. 그 옮김의 속도와 방식을 미리 정해 헌법에 새긴다.

그러나 헌법에 새긴다는 것이 자동으로 옮겨 간다는 뜻은 아니다. 옮김의 매 단계에서 이사회와 위원회와 노사협의회의 역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응답의 통로가 막히지 않아야 한다. Gerere의 양식이 행정 기계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는 거푸집은 매일의 단속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 단속의 양식이 한 회사의 진짜 거버넌스다. 종이 위의 헌법이 아니라 매일의 결정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헌법. 첫 단계의 짜임에 머물지 않고 다음 단계로 옮겨 가는 거푸집. 한국 중소기업에서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이라는 형식은 이 단속의 양분을 먹고 자라난다.

다음 장은 닫는 말이다. 7장은 이 글의 잠정성을 다시 짚고, 거버넌스 코드는 결국 사람이 살아내야 자리잡는다는 본문의 다짐을 이어받는다.


7. 닫는 말 — 결국 사람의 자리

여기까지 이 글은 본문의 사상을 받아 한국 중소기업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거버넌스 코드의 짜임을 풀어내는 일을 했다. 1·2장에서 권력과 이소노미와 삼층구조의 토대를 세웠다. 3·4·5장에서 시인의 자리, 배우의 자리, 살아내는 자리의 셋을 풀었다. 6장에서 그 셋이 한국 중소기업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살폈다. 부록에서는 이 모두에서 길어 올린 핵심을 조문 형식으로 압축한다.

이 글을 닫으며 한 가지를 다시 짚어 둔다. 이 글에 적힌 모든 짜임은 종이 위의 짜임이다. 거버넌스 코드의 모든 조항, 위원회의 모든 양식, 응답의 모든 통로 — 이들은 한 회사의 매일에서 살아 움직이지 않으면 종이 쪼가리에 그칠 뿐이다. 본문이 닫는 말에서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고 적은 것이 바로 이를 경계함이다. 시스템은 그 자체로 회사를 살리지 못한다. 시스템 안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어야 시스템이 살아 움직인다.

이 점이 이 문서의 가장 큰 한계다. 거버넌스 코드를 아무리 두툼하게 적어도 그 안에 들어가 살 사람이 없으면 코드는 코드로 끝난다. 이사회가 매번 어떤 호흡으로 회의를 여는가, 이사가 보고서 너머에서 임직원의 숨결을 만나는가, 위원회의 한 위원이 미처 살피지 않은 자리를 묻는가, 노사협의회의 임직원 대표가 회사가 정한 의제 옆에 자기의 의제를 함께 두는가, 작업장의 임직원이 안전 점검의 한 단계에서 행위를 멈추는가. 이 모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종이 위의 코드를 살아 있는 거버넌스로 옮긴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단순하다. 거버넌스 코드는 사람의 자리이지 짜임의 산물이 아니다. 짜임은 사람이 매일 살아내야 자리잡는다. 사람이 자리잡지 않은 짜임은 자라날 수 없다.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이 진짜로 자라는 자리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매일의 삶 안에서다.

사람의 자리가 본문 6장과 만난다.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친구로 구분했고 아렌트는 그 대척점에 동료의 구도를 세웠다. 한 회사 안의 모든 자리는 결국 둘 중 하나의 구도로 짜인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서로를 마주 선 진영으로 다루는 자리, 경영진과 임직원이 명령자와 피명령자로 갈리는 자리, 위원회와 노사협의회가 권한을 다투는 자리 — 이 모든 자리가 슈미트의 관점과 같다. 그 위에 얹힌 거버넌스 코드는 어떤 형식을 갖추든 같은 곳으로 떨어진다. 한 회사의 짜임이 살아나는 길은 그 모든 자리가 동료의 구도 위에서 짜일 때다. 이사회와 경영진과 임직원과 위원회와 매일의 작업장 — 그 자리에 선 사람들이 함께 회사를 살아내는 동료로 마주할 때만 거버넌스 코드의 짜임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이 글이 풀어 온 짜임은 그 밑에 동료애의 인식이 깔려 있을 때만 자기 일을 한다.

이 글은 부속 문서다. 본문이 놓은 사상의 토대 위에 한국 중소기업이 일반적으로 처한 특징을 고려한 거버넌스의 짜임을 더했다. 그러나 본문도 이 글도 한 회사의 매일에서 살아내는 사람을 대신하지 못한다. 글은 글에서 그치고 삶의 자리는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의 몫이다. 글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을 매일 살피는 일이 이 글을 쓴 사람의 다음 일이다.

다음 작업이 이어진다. (행위고찰3)에서는 ESG의 관점에서 같은 사상을 풀어낸다. 본문 10.4절에서 밑그림을 그려 둔 ESG 3단계 모델을 부속 문서에서 자세히 풀어내는 일이다. 이번 부속 문서가 거버넌스 코드의 짜임을 풀었다면 다음 부속 문서는 ESG의 매일을 풀어낸다. 두 부속 문서가 함께 본문의 사상을 한 회사의 매일로 옮기는 짜임이다.

이 글의 모든 짜임은 잠정이다. 매일 다시 살피고 다시 다듬어야 한다. 그 다시 살피는 일이 이 글을 쓴 사람의 매일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이 그 매일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부록. 거버넌스 코드 조문 (예시)

제1장 총칙

제1조 (목적) 이 거버넌스 코드는 회사라는 작은 정치 공동체가 권력이 발생하는 길을 막거나 왜곡하지 않고 자리들 사이의 공명을 살리도록 설계한 거푸집이다. 이 코드의 목적은 거버넌스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회사가 매일 자기를 다시 살피고 다시 짓도록 돕는 데 있다.

제2조 (기본 원칙) 이 거버넌스 코드의 기본 원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분리는 공명의 조건이다. 자리들 사이에 간격이 있어야 자리마다 제 음을 울리고, 자기 음을 울리는 자리들이 함께 화음을 연주할 때 비로소 권력이 발생한다. 이 코드의 모든 조문은 이 한 원칙에서 길어 올렸다.

제3조 (동료의 구도) 이 코드의 모든 자리는 동료의 구도 위에서 짜인다. 이사회와 경영진과 임직원과 위원회가 서로를 마주 선 진영이 아니라 함께 회사를 살아내는 동료로 마주할 때만 이 코드의 짜임이 자기 일을 한다. 적과 친구를 가르는 구도 위에서는 어떤 조문이든 형식으로 굳는다.

제2장 Facere — 이사회의 자리

제4조 (이사회의 권한과 산물) 이사회는 회사라는 작은 정치 공동체의 헌법을 만드는 자리다. 정관, 이사회 규정, 위원회 규정, 보상 정책, 윤리 규정, 중장기 전략이 이사회가 만들어 내는 산물이다. 이 산물들이 회사의 헌법을 이룬다.

제5조 (분리와 비켜섬) 이사회는 매일의 경영에 끼어들지 않는다. 이사회의 자리는 시작하는 자리이지 응답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 번 단단히 만들고 비켜서는 자리다. 이사회가 매일의 경영에 끼어들면 시작과 응답의 짝이 무너진다.

제6조 (주기적 다시 만들기) 헌법은 영구히 그대로 두는 산물이 아니다. 회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헌법을 주기마다 다시 만든다. 매일 끼어들지 않는 분리와 주기마다 단단히 다시 만드는 책임. 이 둘이 함께 있어야 헌법의 자리가 산다.

제7조 (임직원의 지식이 들어오는 절차) 헌법을 만드는 자리에서 외부 전문가의 객관과 임직원의 객관이 함께 들어오도록 한다. 이를 위해 회사는 다음 세 장치를 마련한다.

  1. 이사추천위원회. 이사 후보의 추천 자리에 임직원의 시선이 들어오도록 마련한 절차다.
  2. 강화된 노사협의회. 일상의 의제가 헌법 만들기의 자리로 올라가는 통로다.
  3. 공동근로복지기금. 임직원이 회사의 자본 소유권에 발을 디딤으로써 회사의 운명에 지속적으로 묶이도록 하는 짜임이다.

세 장치는 따로 일하지 않고 한 짜임으로 일한다.

제3장 Agere — 경영진의 자리

제8조 (경영진의 자리) 경영진은 만들어진 헌법을 매일 수행하는 자리다. 새 헌법을 만드는 자리가 아니다. 분기 실적과 시장의 반응과 위기의 다급함은 헌법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풀어 쓰고 싶은 유혹을 매일 낳는다. 헌법을 고쳐야 풀리는 결정이 오면 경영진은 자기 손으로 그 결정을 내리지 않고 이사회의 안건으로 올린다. 결정의 무게를 헌법 만드는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제9조 (응답의 두 통로) 경영진의 결정과 이사회의 헌법 사이에는 두 가지 응답의 통로가 있다.

  1. 정기 보고. 경영진은 정해진 주기로 결정의 결과뿐 아니라 그 결정이 헌법의 어느 자리와 호응하는가를 함께 정리해 이사회에 보고한다.
  2. 위원회의 응답 구조. 감사위원회·리스크위원회·인사위원회는 매일의 결정이 헌법의 정신과 멀어지지 않게 단속한다. 위원회는 매일의 결정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의 누적이 헌법의 정신을 흔드는 신호가 보일 때 그 신호를 이사회의 자리로 가져간다.

제4장 Gerere — 일상의 양식

제10조 (좋은 Gerere의 원칙) 같은 Gerere가 한쪽에서는 행정 기계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스처가 된다. 그 갈림은 모든 자리가 자기 일을 한 차례 더 묻는 양식에서 일어난다. 좋은 Gerere는 명령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자리들 사이의 응답이 순환할 때 자란다. 이 순환을 매일 살려 두는 일이 무사유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제11조 (의장의 자리)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의 한 구성원이지만 동시에 이사회 자체의 양식을 떠받치는 자리다. 의장은 매일 다음 셋을 단속한다.

  1. 자리의 분리 — 회의가 Agere의 자리로 미끄러지지 않게 한다.
  2. 의제의 방향 — 매 회의의 의제가 결재해야 할 일에서 물어야 할 일로 옮겨 가도록 한다.
  3. 응답의 통로 — 이사회와 경영진·위원회·노사협의회 사이의 통로가 막히지 않게 한다.

제12조 (위원회의 자리) 회사는 다음 세 위원회를 둔다.

  1. 감사위원회 — 외부 감사인이 짚지 않은 자리를 묻는 자리다.
  2. 리스크위원회 — 큰 사건을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 작은 신호를 매일 읽는 자리다. 회사의 짜임에 따라 윤리경영위원회와 안전보건위원회 등으로 나누어 둘 수 있다.
  3. 인사위원회 — 자동화된 결정 옆에 그 결정이 어떤 영향을 만들고 있는가를 묻는 자리다.

세 위원회는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되 응답의 통로로 서로 이어진다.

제13조 (노사협의회와 응답으로서의 결정) 노사협의회는 합의의 자리이지만 또한 결정의 자리다. 합의가 어려운 자리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회사는 노사협의회의 운영 양식을 다음 네 가지로 짠다.

  1. 의제를 양쪽이 함께 짠다.
  2. 토의 시간을 의제마다 미리 짠다.
  3.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때의 결정 양식을 미리 정한다.
  4. 결정의 사후 검토 자리를 두어 결정이 회사의 매일에서 어떻게 살아나고 있는지를 다음 회의에서 다시 본다.

제14조 (윤리·컴플라이언스와 작업장의 자리) Gerere를 진짜로 살아내는 자리는 회의실이 아니라 작업장이다. 제12조 윤리경영위원회의 단속이 위층이라면, 이 자리는 그 아래층이다. 윤리·컴플라이언스는 위반의 자리에서 처벌의 양식만 남기지 않고 그 옆에 왜 일어났는가를 묻는다. Facere의 문서와 작업장에서 살아 있는 Gerere 사이의 거리를 매일 살핀다.

제15조 (단기와 장기의 단속) 회사는 단기 결정의 자리에서 장기 짜임의 모습을 매번 묻는 양식을 둔다. 분기 보고는 단기 실적에 더해 그 분기의 결정이 지속 가능한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정리한다. 인사위원회는 단기 KPI에 더해 보상의 효과가 장기 행위의 양식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다.

제5장 특수한 현실에 맞춘 변형

제16조 (한 사람에게 두 자리가 모일 때) 한국 중소기업에서 CEO와 이사회 의장을 한 사람이 겸임하는 경우 회사는 다음 넷으로 분리를 살린다.

  1. 양식의 분리 — 같은 한 사람이 두 자리를 함께 맡더라도 두 자리의 양식이 다르게 흐르도록 짠다.
  2. 점진적 인적 분리의 약속 — 회사가 자라면 두 자리를 두 사람이 나눠 맡는 자리로 옮긴다. 이 옮김의 시점과 방식을 헌법에 미리 새긴다.
  3. 위원회의 자리 — 한 사람이 두 자리를 맡는 동안 위원회의 자리가 헌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4. 아래로의 보고 — 한 사람이 두 자리를 맡는 동안에는 위로의 보고가 견제의 힘을 잃는다. 경영진은 정해진 주기로 전 임직원에게 경영을 보고하여 보고의 방향을 아래로도 연다.

제17조 (가족 경영·짧은 역사·협력업체 관계) 한국 중소기업의 세 가지 특징이 헌법을 흔들 때 회사는 다음 셋으로 단속한다.

  1. 가족 경영 — 가족 안의 결정이 회사의 자리로 옮겨 갈 때 이사회의 자리를 거치도록 한다. 가족 안의 양식과 회사 안의 양식을 구분한다.
  2. 짧은 역사 — 한 사람의 결정이 헌법에 새겨질 때 그 새김을 다음 세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함께 살핀다. 누적의 결정으로 헌법이 자라게 한다.
  3. 협력업체 관계 — 외부의 압력을 회사의 헌법에 곧장 옮기지 않도록 한다. 외부 압력이 헌법을 흔들 때 그 흔듦이 노사협의회와 이사회의 자리를 거치도록 한다. 거래의 결정이 임직원의 자리를 비용으로만 다루지 않게 단속한다.

제6장 움직이는 거푸집 — 테두리와 잠정성

제18조 (임직원의 테두리) 첫 단계는 직접고용 임직원에게 자본 소유권을 열되, 그 짜임이 협력업체와 외주의 자리에 만드는 효과를 매 분기 살핀다. 협력업체의 임직원과 간접고용의 임직원이 동료의 자리로 넘어오는 옮김의 속도와 방식을 헌법에 미리 새긴다. 노사협의회와 이사회는 그 방향의 상태를 매 분기 점검한다.

제19조 (잠정성과 진화) 거버넌스 코드는 한 번에 자리잡지 않는다. 잠정의 자리에서 시작해 점차 진화한다. 회사는 거푸집을 움직이는 거푸집으로 짠다. 첫 단계의 자리가 단단해지면 다음 단계로 자리를 넓힌다. 임직원의 자리를 넓히고, 가족 안의 자리에서 회사 안의 자리를 떼어내고, 한 사람의 결정에서 누적의 결정으로 헌법을 옮기고, 외부의 압력을 회사의 헌법에서 단속한다. 이 옮김의 속도와 방식을 헌법에 미리 새긴다.

다만 헌법에 새긴다는 것이 자동으로 옮겨 간다는 뜻은 아니다. 옮김의 매 단계에서 이사회와 위원회와 노사협의회의 역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응답의 통로가 막히지 않아야 한다. Gerere의 양식이 행정 기계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 단속의 양식 안에서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이라는 형식이 자라난다.


이 글의 모든 짜임은 잠정이다. 매일 다시 살피고 다시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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