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아빠의 앙가주망'을 여는 글이다. 민주주의·기술·노동·재교육·보육·교육·공동체주의로 이어질 글들이 모두 '왜'를 이 글에 기댄다. 진단의 세부는 뒤에 올 글들이 맡고, 이 글은 그 이유와 방향만 세운다. 주제별 진단은 Research 〉 Theme research의 각 카테고리에서 다룬다. 『네 덕에 사람답게 되어 간다』(출간 준비 중)에 실을 글을 웹에 맞게 고쳤다.
게시일: 2026-07-27
40년 된 구옥(舊屋)
2026년, 우리는 아직 1987년에 지은 집에 산다. 마흔 해 가까이 된 집이다.
그해 유월, 거리를 메운 시민이 군부를 직선제 앞에 무릎 꿇렸다. 그렇게 얻은 헌법으로 우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제도의 민주화를 이룬 것이다. 그 성취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피로 지은 집이다.
그러나 집을 지은 일과 그 안에서 사람답게 사는 일은 다르다. 87년 체제는 제도의 민주화는 이루었으되 정치와 사회와 문화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틀은 세웠으나 그 틀에 담겨야 할 알맹이는 끝내 채우지 못했다. 마흔 해가 지난 지금, 그 빈자리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열망 없이 자란 세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뒤에 교육받은 내 세대는 앞선 세대와 달랐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를 향한 집단적 열망이 적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미 갖춰진 제도 안에서 자랐으니까.
나 역시 열두 해의 의무교육 동안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이념이 아니라 제도이자 태도라는 것, 그것이 잘 작동하는 원리, 그리고 그 사회의 구성원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 그 무엇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학교는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저 특정 유형의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을 외우게 했을 뿐이다.
제도의 안정이 도리어 사람을 무디게 했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광장은 앞선 세대의 일이라 여겼다. 정치는 텔레비전 속 소란이었고, 투표는 사오 년에 한 번 치르는 행사였다. 그 사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살림에 골몰했다.
그러다 2024년 12월 3일 밤이 왔다. 군이 국회로 향했다. 그리고 그 군을 막아선 것은, 민주주의에 무심한 줄 알았던 바로 그 세대를 포함한 평범한 시민이었다. 응원봉을 든 손이 만든 빛의 물결이 어둠을 밀어냈다. 열망 없이 자란 세대가 위기 앞에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몸으로 민주주의를 다시 배웠다.
불행하게도 그 승리는 긴 싸움의 서막에 불과했다. 친위 쿠데타로 정의할 수 있는 이 내란은 일 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할 자리를 뻔뻔함과 음모가 채웠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분열의 골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가장 큰 책임은 죄를 짓고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는 자들에게 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죄를 신속하고 엄정하게 매듭짓는 일은 그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법과 제도의 몫이다. 그 법과 제도가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사법부는 내란을 단죄하는 데 더뎠다. 법원은 내란 우두머리의 구속을 풀어 주고 특검이 청구한 영장을 거듭 기각했다. 더러는 시민의 상식과 법감정에서 한참 벗어난 판결을 내놓았다. 사법부가 스스로 신뢰를 허무는 사이,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개혁 입법이 뒤따랐으나 그마저 정쟁에 발이 묶여 더뎠다. 내란을 매듭짓고 재발을 막을 두 손 — 법원과 국회 — 이 나란히 굼떴다.
거기에 언론이 한몫 더했다. 게으름에 잠식된 무책임한 언론은 진실을 가리는 대신 진영을 확인하는 일에 골몰했다. 그사이 같은 사건을 두고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사실 위에 섰다. 그 밤 광장에서 타올랐던 연대가 채 일 년도 못 가 식어 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묻게 된다. 제도는 왜 이토록 쉽게 굼떠졌는가. 법원도 국회도 언론도, 결국 그 자리를 채운 사람들의 태도가 만든다. 제도라는 그릇이 아무리 잘 빚어져 있어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시민의 태도를 갖추지 못하면 그릇은 이내 빈다. 그 밤 광장에 모였던 연대도 마찬가지였다. 위기 앞에서는 한 몸처럼 뭉쳤으나, 위기가 옅어지자 저마다의 진영으로 흩어졌다. 승리한 쪽은 권력 다툼으로 미끄러졌고, 심판 받은 쪽은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부정선거라는 환상에 매달렸다. 분열은 더 거칠어졌다. 87년 체제는 제도라는 그릇은 세웠으나, 그 그릇을 채울 태도는 끝내 기르지 못했다. 그 빈자리가 바로 우리가 마주한 한계다.
87년 체제의 네 기둥
그 빈집을 떠받친 기둥이 넷 있다. 첫째는 흔히들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대통령 중심제다. 둘째는 사적 정치 집단으로 변질된 검찰 권력이다. 셋째는 자기완결적 권력 체계에 안주한 보수적 사법부다. 12·3 내란은 이 셋의 구조적 문제를 한꺼번에 드러냈다.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준 제도, 그 권력에 줄을 댄 칼잡이들, 그리고 그 모두를 끝내 견제하지 못한 법의 수문장. 마흔 해 묵은 집의 기둥이 한꺼번에 삐걱댄 것이다. 이것이 87년 헌정질서가 안고 태어난 구조적 한계다.
그러나 가장 깊은 한계는 잘 보이지 않는 넷째 기둥에 있다. 바로 경제다. 1987년의 정치적 민주화는 90년대 발흥한 신자유주의와 한 몸이 되었다. 정치는 시민에게 표를 돌려주었으나, 경제는 그 결정권을 시장에 내주었다. 칼 폴라니가 말한 자기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 사회를 삼키는 동안, 우리는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경제에서는 소수의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루의 절반을 일터에서 보내면서도 그곳에서는 한 번도 시민이 되지 못했다. 이 모순이야말로 87년 체제의 가장 깊은 한계다.
경제가 시민을 주체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민주주의는 안에서부터 빈다. 제 삶의 결정권을 시장에 빼앗긴 사람은 정치의 결정권에도 무력해진다. 자기 일터에서 한 번도 주인이 되어 본 적 없는 이에게, 사회의 주인이 되라는 말은 공허하다. 바로 그 빈자리를 파고드는 것이 강한 지도자의 유혹이다. 극우 포퓰리즘은 마초적 지도자의 능력만으로 일어서지 않는다. 시민의 주체성이 비어 버린 자리에 들어선다. 스스로 결정하기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아버지'가 손을 내밀고, 복잡한 토론 대신 단순한 적을 가리키며, 무력감을 분노로 바꿔 준다. 표로 권력을 쥔 뒤 제도를 안에서부터 허무는 일은 그렇게 가능해진다.
트럼프의 미국,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 이들이 한 시대에 함께 솟아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구호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도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시민의 주체성을 비워 냈고, 그 빈자리마다 권위주의가 싹을 틔웠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2·3이 그 증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그 싹을 꺾었다는 것이다. 시민이 광장에 나와 권위주의의 진격을 막아 세웠고, 그 힘으로 정권을 바꿨다. 세계가 휩쓸리는 흐름에 우리는 제동을 걸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꺾은 것은 표면에 드러난 싹이지 뿌리가 아니다. 시민의 주체성을 비워 낸 그 경제의 토양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극우 포퓰리즘은 그 토양 위에서 다시 싹틀 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빛의 혁명은 끝이 아니라 유예다. 그러니 87년 체제의 한계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한발 앞서 마주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새 시대, 낡은 옷
설령 저 네 기둥을 모두 고친다 해도, 1987년에 지은 집은 이미 지나버린 시대의 옷을 입고 있다. 87년의 헌법과 체제는 산업화 시대의 사회를 전제로 삼았다. 공장이 돌고 인구가 늘고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던 시대 말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할 힘은 따로 있다. 더도 덜도 말고 둘만 꼽으라면, 기술의 진보(인공지능, 로보틱스 등)와 인구 구조의 변화(고령화)다. 1987년에는 쉬이 상상하지 못한 힘이다.
이 두 힘이 사회의 토대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경고한 무용계급(useless class)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성장의 사다리마저 무너진다. 보육과 교육, 노동과 재교육, 건강과 식량, 에너지와 자원, 생태와 기후 — 새 시대가 우리 앞에 들이미는 과제다. 마흔 해 묵은 옷은 아무리 고치고 기워도 이 새 몸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헌법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2026년, 그 개헌 시도조차 정쟁에 막혀 주저앉았다. 체제가 스스로를 고칠 힘을 잃었다는 또 하나의 징후다. 게다가 옷만 갈아입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가 돌아가는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 태도까지 새로 짜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역사적 전환'이라는 말의 무게다. 87년 체제의 종언은 한 시대의 끝인 동시에, 우리가 다음 시대에 맞는 집을 제 손으로 지어야 한다는 숙제의 시작이다.
누구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이 전환을 누가 대신 해 줄까.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어느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기를 기다리는 일은 나태하다. 운 좋게 그런 인물이 나타난다 해도, 그에게 우리 삶을 통째로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단계의 일들뿐이다. 그러니 옳다고 믿는 일을 주저 없이 실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삶이 고단한 생활인이다. 생업을 내던질 수 없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여러 사람의 생계를 짊어진 경영자다. 그러니 나의 앙가주망(engagement)은 헌신일 수 없다. 다만 생업을 지키고도 남는 시간과 힘이 있다면,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이해하고 그 사회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데 쓴다. 낮에는 일터로, 밤에는 광장으로.
나의 앙가주망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앞서 말한 넷째 기둥, 곧 경제의 비민주성을 내 일터에서부터 고치는 것이 첫걸음이다.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경제에서는 소수의 지배를 당연시하는 그 모순을, 회사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풀어 보려는 것이다. 자본의 소유권을 나누고, 결정의 권한을 함께 쥐는 일. 그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올 글들에 적었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은 어른의 의무다. 나는 기업인으로 살며 배운 지식과 경험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씨앗으로 뿌리려 한다. 그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작은 조직 하나를 꾸리고 지우학(志于學)이라 이름 붙였다. 『논어』의 경구, "배움에 뜻을 둔다(吾十有五而志于學)"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기술 진보와 인구 구조의 변화가 바꿀 세상에서 내 다음 세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다섯 가지 분야 — 보육, 건강, 노동, 에너지, 생태 — 에 관심과 경험과 자본을 심으려 한다. 어느 것이나 지금 우리가 손대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이르러 더 깊고 더 풀기 어려워질 일들이다.
배움은 머릿속에 지식을 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공동체를 위해 쓸 때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나는 그 늦은 깨달음을 이제야 행동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