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공동소유기업 만들기 실험
『네 덕에 사람답게 되어 간다』 〉 '아빠의 앙가주망' 장 〉 '공동체주의' 편의 둘째 글이다. 편을 여는 종합 글 「함께 자유로워지는 길」이 앞에 선다. 이 글은 연작의 여는 글 「87년 체제의 종언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전환」이 던진 넷째 물음 — 경제의 비민주성 — 에 내가 가장 잘 아는 자리, 곧 회사에서 응답한 1인칭 기록이다. 같은 소재를 세 글이 나눠 맡는다. 이 글은 실험의 실물과 경과와 아쉬움을 기록하고, 사상의 토대는 Essay에 함께 실은 「권력을 공유하는 기쁨」과 근간 『권력을 공유하는 기쁨』이 맡으며, 기업 일반을 향한 권고는 Research 〉 Editorial의 기업 지배구조 브리프가 맡는다. 『네 덕에 사람답게 되어 간다』(출간 준비 중)에 실을 글을 웹에 맞게 고쳤다. 게시일 2026-07-28.
정치는 민주주의, 회사는 왜 아닌가
앞의 글 「87년 체제의 종언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전환」에서 나는 체제를 떠받치는 기둥이자 가장 깊은 한계이기도 한 네 번째 요소로 경제를 꼽았다. 정치는 시민에게 선거라는 결정권을 돌려주었으나 경제는 그 결정권을 시장에 내주었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요체다. 그 글 말미에 한 문장을 남겼다. 자본의 소유권을 나누고 결정의 권한을 함께 쥐는 일, 그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올 글들에 담겠다고. 이 글로 그 시작을 연다.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경제에서는 소수의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순. 이 모순을 논하기는 쉽다. 그러나 논하는 일과 해결하는 일은 다르다. 나에게는 거대 담론이 논하는 것을 바꿀 힘이 없다. 다만 내가 서 있는 곳에 변화의 씨앗을 심을 힘이 있을 뿐이다. 십 년 넘게 한 회사를 경영했다. 그 회사가 내가 가장 잘 아는 작은 사회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지분을 공유했다
2024년 가을 「무엇을 할 것인가」를 탈고하며 나는 목표 하나를 선언했다.
나는 임직원공동소유기업을 만들려 한다. 이 조직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일하는 인간 중심으로 구축할 것이며, 기업의 실체이자 조직의 실제 구성원인 임직원이 자기가 사는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당위적이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나는 이 조직이 부의 창출과 분배 관점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응하는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충돌과 갈등이 아닌 적응과 자기 혁신을 통해 그 기대를 이루고자 한다.
최고경영자 직책을 몇 차례 연임했다. 다시 연임할 수 있을지 모르니 이번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24년 하반기, 노사협의회 구성원과 인사팀과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모색했다. 그 논의가 2025년 초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으로 실체를 얻었다.
기금만 세운 것은 아니다. 회사가 담기 어려운 '공동체로서의 일'을 맡길 비영리임의단체 커먼웰스를 함께 세우고, 옛 상조회의 기능을 그 안에 통합했다. 이사를 추천하는 자리에 임직원의 목소리가 들어오도록 이사추천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노사협의회에는 민주성을 한 겹 더했다. 자세한 경과와 일정은 이 글 끝의 부록에 정리했다.
왜 기금이었나?
하필 왜 공동근로복지기금이라는 제도를 택했을까? 처음부터 이 방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미국은 물론 중국조차 일반화한 우리사주제도(ESOP,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나 영국의 종업원신탁(EOT, Employee Ownership Trust) 같은 자본 민주화 장치를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현존하는 제도를 샅샅이 뒤졌다.
네 가지를 견주었다. 상조회는 법인도 아니고 가입도 자율이라 전사가 함께 묶이지 못한다. 우리사주조합은 개인이 저마다 자사주를 사는 구조라, 역시 전사 단위 참여에 걸린다. 협동조합은 법인은 되지만 드나들 때마다 출자금을 넣고 빼니 운영이 흔들린다. 근로복지기금은 달랐다. 비영리 법인이고, 재직자가 자동으로 가입하며, 회사와 제3자의 출연으로 재원을 댈 수 있다. 전사 자동 가입, 지속성, 재원 조성 — 우리가 가장 중히 여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충족했다.
다만 걸림돌이 하나 있었다. 근로복지기금은 회사 주식을 직접 사는 데 제한을 받는다. 소유의 민주화를 꾀하는 일에 정작 소유의 원천을 막는 셈이다. 이 한계는 출연을 통한 간접 참여로 에둘렀다. 회사와 제3자가 주식과 현금을 기금에 출연하고, 기금이 그 출연을 발판으로 의결권을 확보하는 길이다. 참여 회사 주식의 3% 이상을 보유해 임직원의 권리를 세우는 방안까지 함께 짰다. 여기까지가 무엇을 만들었느냐의 이야기다. 이제 무엇이 모자라는지를 밝혀둬야 한다.
무엇이 아쉬운가?
이 짜임은 최고경영자이자 대주주의 지위에 있는 한 개인의 의지에서 시작했다. 임직원이 스스로 구상하고 제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다.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 이런 일은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결심하지 않으면 좀처럼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구상부터 설립까지 거침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빨리 흔들릴 수 있다. 결심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짜임도 함께 흔들린다. 임직원이 제 일로 여기지 않으면 헛발질에 그친다.
그래서 이 잠정성을 가짜 평등으로 꾸미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원래 대주주에게 집중된 결정 권한을 차츰 이사추천위원회와 노사협의회와 기금으로 옮긴다. 그 옮김의 속도와 방식을 미리 정해 둔다. 스스로 자기를 옮겨 가는 거푸집, 나는 그것을 '움직이는 거푸집'이라 부른다.
두려움도 적어 둔다. 좋은 제도가 그저 보기 좋은 제도로만 남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환경과 체계를 갖춘다고 사람이 저절로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기업은 날마다 효율성과 확실성의 유혹과 싸운다. 권력을 나눠갖는 이 제도는 효율과 확실성에서는 분명 유리하지 않다. 그것은 민주성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비용이다. 나는 아직 실험 초기인 지금, 기업이 이 위험을 비켜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소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지분을 공유하는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소유를 함께한다고 해서 저절로 권력이 나뉘지 않는다. 누가 실제로 결정하는가의 문제는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소유만 나누고 다툼의 자리를 확보해 두지 않으면, 모두가 공동 소유자라는 외양 아래에서 결정의 비대칭이 그대로 굴러간다. 동료라는 이름표 뒤에서 지배가 되풀이된다.
그래서 소유 너머를 보아야 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에게서 한 가지 생각을 빌렸다. 권력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말하고 함께 행위할 때 그 사이에서 솟아나는 힘이다. 대주주의 지분도, 이사회의 의결권도, 경영자의 결재권도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힘이거나 권한일 뿐이다. 진짜 권력은 회의실에서, 노사협의회의 다툼에서, 이사추천위원회의 토의에서, 일터의 복도에서 사람들 사이에 생겨난다.
그 사상의 토대는 『권력을 공유하는 기쁨』(2026)에 따로 썼다. 여기서는 그 중심 생각 세 가지만 간추려 담아 둔다. 첫째, 기업은 사사로운 살림(오이코스, oikos)도 공적 광장(폴리스, polis)도 아닌, 그 둘이 섞인 작은 사회다. 둘째, 권력은 소유가 아니라 함께 행위하는 자리에서 생긴다. 셋째, 그러므로 소유를 나누는 일만으로는 모자라고, 사람이 사유하고 참여하는 자리를 제도로 지켜야 한다. 이 내용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은 독자는 그 책을 펼쳐보기를 권한다.
사람이 사유하고 참여하는 그 자리를 떠받치려고 세 장치를 두었다. 공동근로복지기금, 강화된 노사협의회, 이사추천위원회다. 기금이 임직원을 회사의 운명에 묶고, 노사협의회가 일상의 의제를 끌어올리고, 이사추천위원회가 그 시선을 결정의 자리에 새긴다. 강조할 것은 노사협의회의 다툼을 없애야 할 잡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갈등이 사라진 일터는 평화로운 일터가 아니라, 따져 물을 자리가 닫힌 일터일 수 있다. 다툼은 지워야 할 흠이 아니라 살려 두어야 할 신호다.
작은 한 칸과 큰 사회
이 실험은 한 작은 회사에서 벌어진 작은 일이다. 그러나 작다는 이유로 가볍게 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이 작은 일이 사회 전체가 마주한 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소유가 한 줌에 몰리면 결정의 권한도 그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소유를 나누어야 결정권도 나뉠 수 있다.
기술과 인구가 사회를 뿌리째 흔드는 중이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가치의 대부분은 노동이 아니라 자본을 쥔 쪽으로 흘러간다. 그대로 두면 부의 쏠림은 더 깊어지고, 결정권의 쏠림이 그 뒤를 따른다. 사회가 이 흐름에 답하는 한 갈래가 자본의 소유를 미리 널리 나누는 일 — 사전분배와 지분의 공유다. 「AI 경제 대전환」에서 따로 다루는 거시의 물음이 바로 이것이다.
회사 한 곳에서 지분을 나누는 일과 사회 차원에서 자본 소유를 나누는 일은 크기가 다를 뿐 같은 명제다. 큰 자리는 내 힘만으로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내 손이 닿는 작은 자리는 내 힘으로 첫 바퀴를 굴릴 수 있다. 그 작은 한 자리를 제대로 짓는 일이 큰 자리를 향한 하나의 실체가 된다.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돌아가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된다.
나가며
이 실험이 우리 회사의 앞날을 어떻게 바꿀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결국 그 안을 살아내는 사람에게 달렸고, 그 첫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여야 한다.
그래도 과정을 남긴다. 후에 누군가 비슷한 시도를 할 때, 우리가 어디서 막혔고 어떻게 에둘렀는지, 그 경험이 부디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 성패를 확인할 처지가 아닌데도 더듬어 기록을 남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딸아, 네가 자라 이 글을 펼칠 즈음에는 일터에서 시민이 되는 일이 지금보다 덜 낯설기를 바란다. 그 땅을 고르는 일이 내 몫이라면, 더디더라도 기쁘게 하겠다.
부록 —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 경과
객관적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 이 과정을 주관한 인사팀이 정리한 자료를 윤문하여 옮긴다.
1. 추진 배경 및 목적
2024년 경영지배구조 재정비 과정에서, 대표이사가 기업 성장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임직원 참여를 넓힐 필요를 강조했다. 임직원이 주주이거나 그에 준하는 구조로 경영에 참여할 기반을 마련하고, 기업가치 제고에 따른 성과를 임직원과 더 직접적으로 나누며,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세우기 위해 관련 단체 설립을 검토했다. (대표이사 지시, 2024.08.27)
2. 대안 검토 및 주요 고려 사항
사원조합(가칭) 설립을 전제로 여러 단체 유형을 검토했다. 단체 형태, 가입 구조, 자사주 보유 방식, 세무와 운영 재원을 기준으로 견주었다. (세부 내용은 별첨 1 참조)
- 상조회: 비법인 조직, 자율 가입 구조. 제도적 강제성과 조직 단위 운영·지속성에 한계.
- 우리사주조합: 개인별 자사주 취득 구조, 자율 가입 방식. 전사 단위 참여에 제약.
- 협동조합: 법인 형태로 운영 가능하나, 출자·탈퇴 환급 구조라 운영 안정성과 지속성에 제약.
- 근로복지기금: 비영리법인, 재직자 자동 가입 구조, 회사·제3자 출연 기반 재원 조성 가능. 단, 직접적인 주식 취득에는 제한 존재.
검토 결과, 전사 단위 참여 구조, 운영의 지속성과 안정성, 재원 조성 방식 등을 종합할 때 근로복지기금 외의 대안은 실행에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3. 최종 결정
전 임직원 참여 구조, 법인 기반의 안정성, 다양한 재원 확보 여건의 장점에 더해, 참여 회사 주식 3% 이상 확보를 통한 임직원의 의결권과 권리 확보 방안까지 종합해 근로복지기금 설립을 최종 결정했다. 기금의 직접 주식 취득 제한에 대해서는 출연 기반 간접 참여 방식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4. 추진 경과
- 2024.08 : 경영지배구조 재정립 및 단체 설립 추진
- 2024.09 (3분기 노사협의회) : 단체 검토 결과 보고 및 설립 방향 공유
- 2024.12 (4분기 노사협의회) :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 의결, 주식·현금 출연 구조 확정
- 2025.02 :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 인가 완료 (고용노동부)
- 2025.03 : 법인 설립등기 및 사업자등록, 주식·현금 출연금 납입
- 2025.05 : 커먼웰스(舊 상조회) 기능 일부 통합 및 복리후생 거버넌스 운영
첨부 자료
- 단체 유형 검토 및 사원조합 설립(안) 1부
- 근로복지기금 설립 검토(안) 노사협의회 안내 자료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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