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다리를 치웠는가
『네 덕에 사람답게 되어 간다』 〉 '아빠의 앙가주망' 장 〉 '노동·재교육' 편의 둘째 글이다. 편을 연 앞의 글 「일을 잃는 시대, 일로 서는 사람」은 책에만 싣는다. 앞의 글이 일의 뜻과 잃는 것의 실체를 물었다면, 이 글은 진단의 상세와 처방의 구조를 맡는다. 주제별 진단은 Research 〉 Theme research의 노동/재교육에서 다룬다. 『네 덕에 사람답게 되어 간다』(출간 준비 중)에 실을 글을 웹에 맞게 고쳤다. 게시일 2026-07-28.
이번에는 입구가 막힌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가져간 것은 처음이 아니다. 방직기가 길쌈하는 손을 밀어냈고, 자동차가 마부를 밀어냈고, 컴퓨터가 셈하는 사람을 밀어냈다. 얄궂게도 컴퓨터라는 이름부터가 본래 기계가 아니라 셈을 업으로 삼던 사람을 부르던 말이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두려움이 폭동으로 터진 적도 있다. 19세기 초 영국의 직물 노동자들은 밤마다 공장에 들어가 방직기를 망치로 부쉈다. 역사가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새 일이 생겼다. 없어진 일 곁에 새 일이 생겼고, 새 일로 건너가는 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가 훈련이었다. 회사가 신입을 뽑아 가르쳤고, 서툴던 손이 일을 하며 숙련됐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이 다리가 기술의 충격을 받아 냈다.
앞의 글에서 나는 이번 기계는 다르다고 경고했다. 왜냐하면 이번 기계는 바로 그 다리를 끊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 경고가 현실이 되었는지 숫자를 살펴보고, 왜 그런지 구조를 파헤친다.
숫자부터 보자. 미국에서는 컴퓨터 관련 학과를 갓 졸업한 젊은이의 실업률이 7%를 넘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집계한 수치다. 얼마 전까지 가장 안전한 전공으로 꼽히던 컴퓨터과학과 컴퓨터공학이 이제 모든 전공을 통틀어 실업률이 가장 높은 축에 든다. 회사가 사람을 자르는 것이 아니다. 새로 뽑지 않는 것이다. 나라 전체의 실업률은 낮지만 첫 일자리는 말라간다. 고용 없는 안정이다. 해고는 통계에 잡히지만, 애당초 열리지 않은 문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반론도 있다. 경제학자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은 인공지능을 들인 기업이 생산성을 높여 사업을 넓히고 고용을 늘린다는 실증을 내놓았다. 예일대의 한 연구소는 챗GPT가 나온 이래 약 삼 년간의 자료를 살펴, 인공지능이 노동시장 전체를 흔들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고 말한다. 반대편에 선 철학자 페터 키르히슐래거(Peter G. Kirchschläger)는 이번 기술이 예전 기술과 다르게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예전 기계는 사람의 일을 돕도록 만들어졌으나, 오늘의 데이터 기반 시스템은 가치를 만드는 사슬에서 사람을 들어내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시간이 가려 줄 것이다. 그러나 판정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이행기의 사람이 제대로 살게 하는 일은 논쟁의 끝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논쟁 사이에서 결론의 방향을 가리키는 실증 연구가 하나 있다. 경제학자 안토니오 민니티(Antonio Minniti)와 동료들이 유럽 21개국, 238개 지역의 자료를 살핀 연구다. 인공지능 특허가 두 배로 늘면 그 지역에서 노동이 가져가는 소득의 몫이 0.5에서 1.6%포인트 줄어든다. 더 눈여겨볼 것은 누구의 몫이 줄어드는가다. 지난 세기의 통설은 이랬다. 기술은 저숙련 노동자의 일을 빼앗고 고숙련 노동자의 일을 돕는다. 이번에는 다르다. 중숙련과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을 누른다. 배우면 안전하다는 오랜 믿음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이 연구가 살핀 자료는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생성형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의 것이다. 그러니 방향은 그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의 기계는 그 방향에 속도를 붙였을 뿐이다.
정리하자면 두 가지가 겹쳐 일어난다. 사다리는 입구에서 끊기고, 이미 올라간 사람의 발밑도 내려앉는다. 청년은 오를 계단을 잃고, 중년은 딛고 선 계단이 꺼지는 것을 본다.
겹으로 무너진 사다리
일의 사다리가 이만큼 흔들려도 다른 사다리가 멀쩡하다면 사람들은 버틸 수 있다. 우리 사회에 그런 다른 사다리가 있는가?
없다. 앞의 글에서 지적했듯 우리 사회는 소득의 쏠림보다 자산의 쏠림이 깊다. 세계불평등보고서 한국편 기준, 상위 10%가 소득의 37%를 가져가고 자산의 66%를 소유한다. 버는 것은 열에 넷을 가져가는데 쌓인 것은 열에 일곱 가까이를 갖는다. 월급을 모아 형편을 일으키는 길은 이미 가파른데, 그 월급의 원천인 일자리마저 말라간다. 일의 사다리도 자산의 사다리도 멀쩡하지 않다.
세제(稅制)가 이 쏠림을 굳힌다. 우리 세금은 자산을 사고팔 때 무겁고 들고 있을 때 가볍다. 거래에는 높은 세율을 물리고 보유에는 낮은 세율을 물린다. 그래서 쌓인 부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고, 밖에서 새로 들어갈 문은 좁다. 이 기형을 어떻게 바로잡을지는 뒤에서 말하기로 한다.
눈을 세계로 돌리면 사정은 더 나쁘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자 가운데 21억 명, 비율로는 60% 가까이가 사회적 보호 밖에서 일한다. 아프면 그만두고, 그만두면 끝이다. 3억 명 가까이는 하루 3달러도 안 되는 벌이로 산다. 기계가 만든 부를 나눌 세수조차 없는 나라는 이 충격을 소화할 길이 없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국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반도체 산업 덕분에 이 거대한 전환의 가치사슬 안에 단단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나라가 버는 돈과 국민이 나누는 몫은 별개의 문제다. 반도체가 벌어들인 이익은 먼저 그 기업과 주주에게 쌓인다. 그 이익이 임금과 세금을 거쳐 얼마나 넓게 퍼지는가는 제도가 정한다. 제도를 제때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생산과 이익이 늘어나는 나라 안에서도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어난다.
먼저 맞는 사람이 늦게 배운다
1980년대, 사무실에 컴퓨터가 들어오자 비서와 타자수와 자료 입력원의 일이 사라졌다. 대부분 여성의 자리였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밀려난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여성은 남성보다 두 배 넘게 노동시장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오랜 실업 끝에 벌이가 적은 일로 옮겨 가거나, 일을 영영 접었다.
이번에도 같은 자리가 먼저 흔들린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이 인공지능에 밀릴 위험이 가장 큰 직업 마흔 개를 꼽았다. 그중 약 60%가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업이다. 고소득 국가에서 여성의 일은 남성의 일보다 세 배 가까이 자동화로 대체되기 쉽다는 국제노동기구의 관측도 있다. 여성이 못나서가 아니다. 사무·행정·지원처럼 인공지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여성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여성이 그 일에 몰린 것도 스스로 고른 결과가 아니다. 오랫동안 노동시장이 여성에게 열어 준 문이 주로 그쪽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밀려나는 사람에게 배울 기회라도 먼저 가야 할 텐데, 정작 현실은 거꾸로다. 회사가 인공지능을 쥐여 주는 손길도, 배워 보라고 권하는 손길도 남성에게 먼저 간다. 인력 서비스 기업 랜스타드(Randstad)의 국제 조사에서 회사가 인공지능을 쓰게 해 주었다는 응답은 남성이 41%, 여성이 35%였다. 배울 기회를 제안받았다는 응답도 남성이 38%, 여성이 33%였다. 몇 %포인트 차이가 대수냐고 물을 수 있다. 대수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능력에 웃돈이 붙기 시작했고, 회사는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올릴지를 그 능력으로 가리기 시작했다. 먼저 맞는 사람이 늦게 배우면 격차는 두 번 벌어진다.
앞의 글에서 이미 말했다. 재교육은 개인의 생존술이 아니라 사회의 책무다. 재교육을 각자의 몫으로 두면 기회는 이미 가진 사람에게 먼저 가고, 충격은 이미 약한 사람에게 먼저 간다. 사십 년 전에 그렇게 두었고, 그 결과를 우리는 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처방에는 순서가 있다. 떨어지는 사람을 받을 바닥을 먼저 다지고, 새 일로 건너갈 다리를 놓고, 그 값을 치를 돈의 물길을 돌린다. 안전망, 전환, 조세다.
첫째, 안전망이다.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 비공식으로 일하는 사람에게까지 닿는 보편적 보호가 먼저다. 그리고 기계가 사람을 뽑고 재고 내보내는 일이 늘수록, 그 판정의 과정을 열어 보일 의무를 함께 세워야 한다.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에 사람이 따져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바닥을 다지는 일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바닥이 없으면 사람은 다리를 건널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둘째, 배움과 일의 전환이다. 학위 하나로 사십 년을 버티는 시대는 끝났다. 필요할 때마다 짧게, 거듭 배우는 판을 사회가 짜야 한다. 왜 사회인가. 키르히슐래거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자리를 향해 알아서 다시 배우라고 다그치는 것은,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변화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일이다. 변화를 만든 것은 개인이 아니다. 그러니 다리를 놓는 비용도 개인의 몫일 수 없다. 새 일이 어디서 자랄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기계가 끝내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이 사람 사이의 일이다. 돌보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이끄는 일 — 사람의 연결 자체가 가치가 되는 자리가 커지리라는 전망이 있다. 다리는 그쪽으로도 놓아야 한다.
셋째, 조세다. 기계가 늘린 몫은 가만히 두면 노동이 아니라 자본으로 흐른다. 그렇다면 세금의 자리도 옮겨야 한다. 노동에 물리는 짐을 덜고 자본에 물리는 몫을 늘린다. 한국의 갈 길은 앞에서 이미 드러났다.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는 것이다. 토지는 공급이 고정되어 있어 세금을 물려도 시장을 비틀지 않는다는 것이 경제학의 오랜 논리다. 쌓인 부에 제 몫의 짐을 지우는 일은 징벌이 아니라 설계의 교정이다. 세계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상위 부에 물리는 세계 공통의 세금, 데이터와 기계의 사용에 물리는 세금. 키르히슐래거는 그 재원 위에 기본소득과 '사회 시간'을 묶는 틀까지 그려 놓았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상에서도 소득과 존엄과 쓸모의 감각을 함께 지키려는 설계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이 구상의 성패를 가늠하지 못하겠다. 다만 물음의 방향은 옳다고 본다. 일이 줄어드는 세상에서 사람의 자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 이 물음을 정면으로 받는 구상이기 때문이다.
세 단계의 방향은 여기까지다. 보유세를 어떤 순서와 속도로 올릴지, 첫 경력을 여는 프로그램을 누가 어떻게 짤지, 흩어져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디에 모을지 — 그 상세한 셈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내 연구의 숙제로 남긴다.
치운 손이 다시 놓는다
이제 제목의 물음에 답한다. 누가 사다리를 치웠는가?
앞선 민주주의 편에서 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비워지는가」라는 피동의 제목을 쓰고, 빠진 주어를 찾는 데서 글을 시작했다. 이 글은 처음부터 주어를 물었다. '누가' 치웠는가? 답부터 말하자면, 누구다라고 딱 지목할 악당은 없다. 기계가 치운 것도 아니고 기계를 만든 사람들이 치운 것도 아니다. 사다리를 치운 것은 바로 규칙이다. 신입을 뽑아 기르는 것보다 기계를 들이는 편이 이득이 되게 짜인 규칙. 쌓인 부에는 가볍게 묻고 일해서 버는 돈에는 꼬박꼬박 묻는 규칙. 먼저 밀려나는 사람에게 배울 기회가 나중에 가도록 놓아두는 규칙. 이 규칙들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사람이 정했다. 하나하나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들이 쌓여 사다리를 치워 왔다. 세계불평등보고서는 이렇게 못 박는다. 불평등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원인이 사람의 선택이라면 다시 선택하면 된다. 바닥을 다지고, 다리를 놓고, 돈의 물길을 돌리는 세 단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그렇게 다시 놓는 사다리는 예전 것과 같을 수 없다. 예전 사다리는 오르는 사다리였다. 남보다 높이 오르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시 놓는 사다리는 서는 사다리여야 한다. 일로 생계를 꾸리고, 일로 사람을 사귀고, 일하는 자리에서 사람이 주체로 서는 것. 그 이야기 — 일터에서 주인이 되는 이야기 — 는 이 장의 끝에서 잇는다.
근거 자료
이 글의 사실 진단은 두 연구 메모와 몇몇 공개 자료에 기댔다. 본문에는 수치의 출처와 기준을 가볍게만 심고,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정리한다.
초급 일자리와 고용 없는 안정 — 뉴욕 연방준비은행 집계 기준, 미국 최근 대졸자(22~27세) 실업률은 컴퓨터과학 전공 7.0%, 컴퓨터공학 전공 7.8%로 전공을 통틀어 가장 높은 축이다.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연구소(CELI)는 기업이 해고 대신 채용을 멈추는 '큰 얼어붙음(big freeze)'으로 이 국면을 설명한다 — 고용은 안정되어 보이나 기회가 사라진다. 초급 채용의 급감을 업계는 '초급 일자리 압착(entry-level squeeze)'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Yale Insights, The Real Job Destruction from AI Is Hitting Before Careers Can Start, 2026)
낙관과 신중론 — 필립 아기온 등은 인공지능을 도입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사업 확장과 고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실증을 제시한다. 예일대 버짓랩(Budget Lab)은 챗GPT 공개 뒤 33개월의 자료에서 노동시장 전반의 뚜렷한 교란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Yale Budget Lab, 2025)
자본 편향 혁신의 실증 — 안토니오 민니티(Antonio Minniti)와 동료들의 유럽 21개국 238개 지역 자료(2000~2017년) 분석. 인공지능 특허 강도가 두 배로 늘면 노동소득 몫이 0.5~1.6%포인트 준다. 임금 압착은 중·고숙련에서 가장 크고, 저숙련은 고용이 소폭 늘어 몫의 하락이 덜하다. 본문이 말한 '지난 세기의 통설' — 기술은 저숙련 노동을 대체하고 고숙련 노동을 보완한다 — 을 경제학은 '숙련 편향 기술 변화(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라 부른다. 이 연구는 인공지능이 그 정형에서 벗어난다는 실증이다. 연구진의 처방은 평생 배움 체계 투자, 그리고 노동 과세를 줄여 오염·토지·소비 과세로 옮기는 세제 전환이다. 토지는 공급이 고정되어 과세가 왜곡을 낳지 않는다는 논거가 여기 붙어 있다. (Minniti, Prettner, Venturini & Bloom, VoxEU/CEPR, 2026. 3.)
노동의 몫 하락 — 미국 노동통계국(BLS) 기준 2026년 1분기 노동소득분배율 54.1%(1947년 집계 이래 최저)는 얼굴 글 근거 자료에 정리했다. 가치가 자본으로 쏠리는 거시 구조는 기술 편이 다룬다.
세계 노동의 바닥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과 사회 전망 2026」 기준, 전 세계 노동자 21억 명(약 58%)이 비공식 고용 상태로 사회적 보호 밖에 있고, 2억 8,400만 명이 하루 3달러 미만의 벌이로 산다. (ILO, Employment and Social Trends 2026)
한국의 자산 쏠림 — 세계불평등연구소 「세계불평등보고서 2026」 한국편 기준, 상위 10%가 소득의 37%, 자산의 66%를 차지한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2024)의 순자산 상위 10% 점유율 44.4%와는 자료원과 산정 기준이 다르다(얼굴 글 근거 자료 참조). 세계 기준으로는 상위 10%가 부의 75%를 쥐고 하위 50%는 2%를 쥔다. 보고서는 불평등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고 결론짓는다. (World Inequality Lab, World Inequality Report 2026)
성별 격차 —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이 꼽은 인공지능 대체 위험 상위 40개 직업 가운데 약 60%에서 여성이 다수다(미국 BLS 기준). 국제노동기구 연구로는 고소득 국가에서 여성의 일이 남성보다 약 세 배 자동화되기 쉽다. 1980년대 컴퓨터 도입기에 밀려난 여성 노동자는 남성보다 두 배 넘게 노동시장을 떠났다(BLS 추적). 랜스타드 「Understanding Talent Scarcity: AI and Equity」(2024) 조사 — 전 세계 직장인 1만 2,000명과 직무 프로필 약 300만 건 기준 — 에서 회사가 인공지능 접근을 제공한 비율은 남성 41% 대 여성 35%, 숙련 기회 제안은 남성 38% 대 여성 33%였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글로벌 AI 일자리 지표」(2025)는 인공지능 숙련 노동자의 임금 웃돈을 56%로 잰다. 얼굴 글 근거 자료의 ILO 노출 수치(29% 대 16%)와 고위험 직군 수치(여성 9.6% 대 남성 3.5%)도 같은 갈래다. (Noreena Hertz, The AI Labor Shock Is Coming for Women, Project Syndicate, 2025. 11. 외)
가치 사슬에서 사람을 들어내는 설계, 그리고 SERT — 페터 키르히슐래거는 오늘의 데이터 기반 시스템(DS)이 사람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가치 사슬에서 사람을 들어내도록 설계되었다고 진단하고, 존재하지 않을지 모를 일자리를 향한 재교육 요구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변화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새 책에서 제안한 SERT(Society-, Entrepreneurship-, and Research-Time) 모델은 다섯 기둥으로 짜였다 — 세금으로 재원을 대는 기본소득, 그 대가로 각자 고른 '사회 시간'을 내는 조건부 분리(스위스 시민복무제가 본보기), 사회 시간 속에서 일의 비경제적 기능(인정·일과·쓸모의 감각)을 누리게 하는 설계, 교육·연구·창업에 대한 유인(그만큼 사회 시간을 줄여 줌), 그리고 과세를 노동에서 자본으로 — 데이터 흐름·데이터양·시스템 사용으로 — 옮기는 세계 공통 조세. (Kirchschläger, What Happens When Paid Work Disappears?, Project Syndicate, 2026. 1.)
관계 부문 전망 — 앤마리 슬로터(Anne-Marie Slaughter)와 애브니 파텔 톰프슨(Avni Patel Thompson)은 인공지능이 관계 지능을 결여한다는 진단 위에서, 돌봄·가르침·상담·코칭처럼 사람의 연결 자체가 값이 되는 관계 부문(relational sector)이 커지는 경제를 전망한다. (The Intelligence That AI Is Missing, Project Syndicate, 2026. 6.)
세수 없는 나라의 충격 —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인공지능 공급망에 자리를 얻지 못한 나라들이 재분배할 세수 없이 대량 실직을 맞을 위험을 경고한다. 한국은 반도체로 공급망의 승자 쪽에 선 나라로 꼽힌다. (The AI Economy's Permanent Underclass, Project Syndicate, 2026. 6.)
연구 메모 — 「AI와 AGI의 도입이 노동 시장에 미칠 변화」((주)지우학, 2026. 2.), 「2026 복합위기 — 사막화 진행 중인 노동시장과 무너진 성장 사다리 대응 전략 제안서」((주)지우학, 2026. 5.). 이 글의 골격 — 진단에서 안전망·전환·조세의 3단계 처방으로 — 은 5월 메모의 단계별 전략을 따랐다. 조세 모델링, 민관 협력형 첫 경력 프로그램, 디지털 사회적 대화 기구의 상세 설계는 메모가 예고한 후속 연구, 곧 지우학의 숙제다.
태그
#노동 #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