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를 들이는 사람
『네 덕에 사람답게 되어 간다』 〉 '아빠의 앙가주망' 장 〉 '기술진보의 사회 영향' 편을 여는 얼굴 글이다. 여는 글 「87년 체제의 종언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전환」이 꼽은 두 힘 가운데 기술의 진보를, 기계를 들이는 경영자이자 그 영향을 살피는 연구자의 자리에서 응답한다. 둘째 글 「과세보다 소유」가 이 글이 미뤄둔 숙제를 받아 뒤를 잇는다. 주제별 진단은 Research 〉 Theme research의 기술진보에서 다룬다. 『네 덕에 사람답게 되어 간다』(출간 준비 중)에 실을 글을 웹에 맞게 고쳤다. 게시일 2026-07-28.
기계를 들이는 사람
나는 다달이 기계의 값을 치른다. 공장에는 로봇을 들이고, 사무실에는 인공지능을 앉힌다. 사람을 뽑듯 기계를 들이는 결정을 내리고, 그 청구서를 결재한다. 예전에 기계는 한 번 사면 그만이었다. 요새는 다르다. 인공지능은 쓰는 만큼 값을 낸다. 다달이 비용을 승인하며 시대가 바뀌었음을 느낀다.
한국은 세계에서 로봇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내 일터가 좋은 실례(實例)다. 나는 이십 년 넘게 제조 기업에서 일했고, 십 년 넘게 그런 회사를 경영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세운 작은 연구·투자 기관에서 기술 진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기계를 들이는 손과, 그 기계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피는 눈. 나는 그 눈과 손을 한 몸에 품고 이 글을 쓴다.
기계를 들이는 사람이기에 나에게는 물을 책임이 있다. 이 기계는 과거와 무엇이 다른가? 이 기계가 늘린 몫은 어디로 가는가? 그 몫을 누가 소유하는가?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다
지금껏 기계는 도구였다. 칼은 채소를 썰지 사람을 찌를지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정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손이었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오늘의 기계가 그 선을 넘었다고 경고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행위자라는 것이다. 앞선 비유를 살려 말하자면 무엇을 벨지 스스로 정하는 칼이다. 실제로 기계는 지시를 받는 자리에서 일을 맡는 자리로 옮겨 앉았다. 업계는 이를 Agentic AI(행위자형 인공지능)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 행위자(agent)는 어디까지 발전할까? 전문가들이 다투는 물음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사람이 하는 모든 지적인 일을 사람만큼 해내는 기계, 이른바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언제 오는가다. 관측은 엇갈린다. 두어 해 안이라 보는 이가 있고, 십 년 이내에 온다고 보는 이가 있다.[1] 그러나 방향에서는 갈리지 않는다. 인류가 겪어 보지 못한 기술의 변곡점이 십 년 안에 온다는 데는 낙관하는 쪽도 신중한 쪽도 고개를 끄덕인다. 동력은 기계가 스스로 기계를 만드는 고리(loop)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의 연구와 개발을 맡기 시작하면 발전은 사람의 속도를 벗어난다. 그 고리가 완성되는 날, 기술 개발의 고삐는 사람 손을 떠난다.
나는 이 글에서 기술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계가 무엇을 해낼지는 나보다 잘 아는 이가 많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기계가 바꾸는 사회의 토대다. 가치가 어디로 흐르고, 권력이 어디에 쌓이는가? 이것은 기술자의 물음이 아니라 시민의 물음이다. 앞의 글에서 말한 넷째 기둥, 곧 경제의 비민주성이 걸린 물음이다.
몫은 어디로 흐르는가
기계는 생산을 늘린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생산은 늘어나는데, 일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어들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1947년부터 노동소득분배율을 측정해 왔다. 그 비율이 지금 역사상 가장 낮다.[2] 그렇다면 늘어난 몫은 어디로 간 것일까? 따져보니 늘어난 몫은 자본으로, 곧 기계를 소유한 쪽으로 흘러갔다.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한 사람을 놓고 사고실험을 해보자. 회사가 인공지능을 들인다. 그의 일 가운데 일부를 기계가 맡는다. 그 기계의 값은 회사가 치르는데, 잘 생각해보면 회사 살림은 그와 같은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그러니 그는 자기 일을 대신할 기계의 값을 자기 노동으로 함께 치르는 셈이다. 그러므로 기계가 이득을 늘렸다면 마땅히 노동이 그 이득을 함께 가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그렇게 늘어난 이득은 대부분 노동이 아니라 주주가 가져간다. 비용은 노동이 치르고, 이득은 자본이 가져가는 현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시대에는 기여와 분배를 그런대로 정직하게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다. 임금이다. 생산이 늘면 일한 사람의 몫도 따라 늘도록 임금이 둘을 이어 왔다.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나름의 노릇은 했다. 그런데 기계가 늘린 이득은 임금이 닿지 않는 곳에 쌓인다. 지분의 몫이다. 기여는 노동으로 하는데 몫은 소유로만 받는다. 다리가 여기서 끊긴다.
누군가는 주주가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댔으니 이득은 그 위험 감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나도 투자로 밥값을 벌어 본 사람이라 그 논리에 공감한다. 나는 주주가 추가 이윤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빠져 있는 자리다. 그 이득에는 위험을 감수한 용기뿐만 아니라 노동의 기여가 섞여 있다. 그런데 이득이 흐르는 통로는 소유 하나뿐이라, 소유가 없는 기여는 대가를 받을 통로가 없다. 문제는 자본이 이득을 나눠 갖는 체계가 공고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노동이 이득을 나눠 갖는 체계가 평소에는 아예 없거나 기껏해야 유동적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셈법을 매일 목격한다. 내가 결재한 청구서에 따라 지불하는 돈은 우리 회사 사람들이 함께 번 돈이다. 기계가 일을 잘하면 회사의 가치는 오르고, 그렇게 오른 가치는 고스란히 지분을 가진 쪽에 쌓인다. 함께 비용을 치른 노동은 소유에 참여하지 않는 한 그 가치 상승분을 나눠 받을 길이 없다. 물론 이윤의 일부를 임금이나 상여로 돌려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되돌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렇게 하기로 정해야 비로소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쏠림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다.
누가 소유하는가
쏠림은 기업의 담장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는 회사 살림이 아니라 나라 살림 규모의 자본이 든다. 최고 수준의 기계 하나를 한 차례 가르치는 데 드는 돈이 웬만한 기업의 한 해 벌이를 넘본다. 그러니 살아남는 것은 세계에서 손꼽는 몇몇 기업뿐이다. 기계를 쓰는 값은 나날이 싸지지만, 기계를 만들고 소유하는 일은 소수에게 몰린다. 쓰는 자는 많아지고 가진 자는 줄어든다.
나라 사이에도 차이가 벌어진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가치사슬 안에 든 나라와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한 나라다. 가치사슬 밖의 나라는 기계에 일자리를 내어주는 충격은 고스란히 맞으면서, 그 과실을 거둘 세금도 나눌 방법도 갖지 못한다. 그런 나라일수록 기계부터 서둘러 들이자는 유혹이 크다. 벌어진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을 지름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서가 있다. 디지털 기반과 제도 역량이라는 사회의 토대를 먼저 갖춰야, 들인 기계가 성장의 엔진이 된다. 토대 없이 서둘러 기계를 들이면 엔진은 얻지 못하고 일자리만 잃는다. 성패는 얼마나 빨리 들이느냐가 아니라 어떤 순서로 들이느냐에 달렸다.
한국은 인공지능 가치사슬의 중심에 있는 나라다. 메모리 반도체 등 나날이 중요성이 더해지는 부품으로 큰 몫을 가져간다. 로봇 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나라가 나서서 소버린 AI(Sovereign AI)라 부르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3]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인공지능은 위협이 아니라 해법이라 불린다. 인구가 줄어 비는 일손을 기계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반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총량의 셈이 분포의 어긋남을 가릴까 저어된다. 기계가 대체하는 일과 사람이 모자란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계는 문서와 화면 앞의 일부터 대신하는데, 일손이 비는 곳은 돌봄과 현장이다. 사무실에서 밀려난 사람이 다음 날 병상 곁이나 용접대 앞에 설 수는 없다. 그리고 기계가 낳는 몫도 큰 기업이 먼저 거둔다. 합계가 맞아떨어진다고 셈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
소유의 지형은 곧 권력의 지형이 된다. 앞의 글에서 나는 87년 체제의 가장 깊은 한계로 경제의 비민주성을 꼽았다. 소수가 자본을 소유하고 다수가 결정에서 밀려나는 구조 말이다. 기계의 시대는 그 구조를 허물기는커녕 더 깊이 판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생산 수단이 역사상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모이고 있다.
사람이 정한 짜임은 사람이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기계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사회 전체의 몫을 늘릴 뿐이다. 그 몫이 어디로 흘러가게 할지는 사람이 정한다. 법과 제도와 계약이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짜임은 소유(자본)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 그러나 사람이 정한 것은 사람이 고칠 수 있다. 쏠림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 나는 이 사실에서 절망이 아니라 일감을 본다.
방향은 하나로 모인다. 열매가 다 열린 뒤에 잘 나누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할 일은 나무의 지분을 미리 나누는 일이다. 기계가 만들어낼 초과 몫에 모두의 지분을 미리 심는 것, 곧 소유의 사전 분산이다. 그 지분을 어떤 그릇에 담을지, 그 그릇을 어느 엔진이 돌릴지, 세금의 자리는 어떻게 옮길지 — 상세한 풀이는 뒤의 글에 미룬다. 여기서는 방향만 밝혀 둔다. 소유를 미리 나누어 두지 않으면 쏠림은 깊어지기만 한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관점 하나를 적어 둔다. 기계가 흔해질수록 사람이 귀해진다. 기계가 값싸게 일을 할수록,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의 값이 오른다. 곁에 있어 주는 일, 부대끼며 마음을 살피는 일, 관계를 맺고 지키는 일 같은 것들이다. 기계는 답을 줄 수 있지만 관계는 사람만 맺을 수 있다. 나는 기계가 사람의 일을 하나둘씩 대체해 가는 시대의 끝에서, 사람의 일이 완전히 사라진 미래가 아니라 사람다운 일이 남아 있는 미래를 본다. 그 미래가 눈앞에 왔을 때, 귀해진 사람의 값을 소수만 치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맡긴 설계의 숙제다.
그 설계는 먼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기계를 쓰는 사람은 물어야 한다. 이 기계가 늘린 몫은 어디로 가는가. 나는 도구의 주인인가, 도구가 나의 주인인가. 기계를 들이는 사람은 한 걸음 더 물어야 한다. 이 기계로 커진 몫이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도 흐르도록 짜임을 놓았는가. 그리고 사회는 규칙을 다시 써야 한다. 몫의 흐름을 정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법과 제도와 계약, 곧 사람이 쓴 규칙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쓴 규칙은 사람이 고쳐 쓴다.
근거 자료
이 글의 사실 진단은 두 연구 메모와 몇몇 공개 자료에 기댔다. 본문에는 수치와 전문 용어를 들이지 않고 진단만 빌려 내 언어로 옮겼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정리한다.
연구 메모
- 「(메타분석-AI산업) AGI 전망 @ 2026년 2월」((주)지우학, 2026년 2월) — 인공일반지능(AGI)의 도래 시기를 둘러싼 전문가 전망, 자기 개선 루프(기계가 기계를 만드는 고리)가 닫히는 징후, 유발 하라리의 행위자론(스스로 결정하는 칼), 자본·인프라 장벽과 승자 독식 구조, 개발과 활용의 격차를 정리한 메모.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다'와 '누가 소유하는가' 앞부분의 뼈대를 여기서 가져왔다.
- 「AI 경제 대전환 연구 — 한국 사회의 관점에서」((주)지우학, 2026년 6월) — 앤스로픽 「경제정책 프레임워크」(2026.6)에 대한 한국판 응답. 한국이 맞는 두 충격(인공지능이 노동을 밀어내고 인구구조가 노동을 거둬 간다)의 비틀림, 기업이라는 결절점에서 비용은 노동이 치르고 이득은 자본이 가져가는 구조, 자본에 과세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산수, 사전분배형 자본계좌와 지분 공유의 한국 토양 검토를 담은 메모. '몫은 어디로 흐르는가'와 한국 대목의 뼈대를 여기서 가져왔다.
로봇 밀도 — 국제로봇연맹(IFR) 『World Robotics 2025』 기준,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 명당 1,220대로 세계 1위다. 2위 싱가포르(818대), 3위 독일(449대)과 격차가 크고, 2019년 이후 해마다 평균 7%씩 늘었다.
노동의 몫 하락 — 본문 각주 2에 적은 미국 노동통계국(BLS) 노동소득분배율 통계다. 상세는 「일을 잃는 시대, 일로 서는 사람」의 근거 자료에 정리했다. 인공지능이 노동소득 몫을 줄인다는 유럽 지역 단위 실증(민니티 외)은 「누가 사다리를 치웠는가」의 근거 자료에 있다.
기업의 인공지능 지출 — 멘로벤처스 집계 기준, 2025년 파운데이션 모델 API 지출은 125억 달러, 생성형 AI 인프라층 전체는 180억 달러다. 기업의 LLM 지출은 2024년 말 35억 달러에서 2025년 84억 달러로 반년 만에 두 배가 됐고, 추론 지출이 학습 지출을 넘어섰다 — 한 번 사는 기계가 아니라 날마다 값을 치르는 기계가 됐다는 뜻이다.
자본 장벽 — 담비사 모요(Dambisa Moyo)는 2030년까지 AI 산업 전반의 자본 투자가 7조 달러를 넘고, 2027년경 단일 대규모 모델 훈련 비용이 10억 달러를 넘는다고 내다봤다. (Project Syndicate, 2026. 1.)
나라 사이의 격차 —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AI 공급망에 든 나라(한국·일본·대만 등)와 그 밖에 남은 나라의 격차를 짚고, 밖의 나라는 재분배할 이익도 세수도 없이 일자리 충격만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Project Syndicate, 2026. 6.)
성급한 자동화 — 마크알렉상드르 둠바(Mark-Alexandre Doumba)는 토대(디지털 인프라, 제도 역량) 없이 서두른 자동화가 중간 숙련 일자리만 지우고 성장 엔진을 만들지 못한다고 진단하며, 디지털화가 자동화에 앞서고 역량이 규모에 앞서는 순서를 제안했다. (Project Syndicate, 2026. 2.)
한국 안의 쏠림 — 통계청 통계개발원 기준 AI 도입률은 대기업 9.2%, 중소기업 2.9%다(2021년 기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도입률을 5.3%로 집계했다(2025). 기계가 낳는 몫을 큰 기업이 먼저 거둔다는 대목의 근거다.
관계의 값 — 앤마리 슬로터(Anne-Marie Slaughter)와 아브니 파텔 톰프슨(Avni Patel Thompson)은 인공지능에 아직 없는 관계 지능(relational intelligence)을 짚으며, 사람 사이의 연결이 값을 갖는 관계 부문 경제의 가능성을 전망했다. '기계가 흔해질수록 사람이 귀해진다'의 결을 받치는 근거다. (Project Syndicate, 2026. 6.)
옛 글 — 「87년 체제의 종언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전환」: 넷째 기둥(경제의 비민주성), 기술 진보와 인구 구조라는 두 힘. 「대물림되는 출발선」: "기계가 흔해질수록 사람이 귀해진다"의 첫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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